
“여보! 강산이 엄마 출발합시다.” 오늘은 거제시 자원봉사협의회 주최로 선진지 견학이 있었다. 장소는 전라남도 장흥군에 위치한 소록도.
졸린 눈을 부비며 도착하니 벌써 많은 분들이 와 계셨다. 서둘러 인사를 마치고 자리에 앉자 차는 벌써 출발을 했다. 어딜 가든 여행이란 건 설렘이 있다. 항상 바라보는 차창 밖 거제전경이건만 오늘은 뭔가가 다르다. 더 새롭고 멋져 보인다.
진주 사천을 거쳐 순천 보성을 지나 장흥에 도착했다. 장흥에 도착해 가이드가 유자가 유명한 장흥이라고 자랑하며 소개하자, 우리는 거제유자가 더 원조라며 아이들 같은 시비가 붙었다.
녹동선착장에 도착하니 소록도가 코앞이다. 배로 약10분이면 도착할 수 있을 만큼 가깝지만 녹동인과 소록도인의 마음의 거리는 70년의 오랜 세월동안 닫혀 있었다. 소록도는 나환자촌으로 유명한 곳이다. 한센병 환자들의 강제 집단 거주지였다.
그들의 삶이고 병원이며 죽음까지 이곳에서 마무리된다. 1916년 5월-개원하여 700명의 원생이 1945년에는 거의 7000명에 육박했다가 해방이 되고 난 후 현재는 630명 정도가 살고 있다고 한다.
선착장에서 큰 병원이 있는 중앙동까지 가이드의 안내를 들으며 걸어갔다. 산책 같은 느낌이었다.

그 일례로 신사가 버젓이 자리하고 있었다. 지금은 문화재로 보존하고 있다고 하지만 어느 집 지붕에 옹기종기 도란도란 얘기를 하는 듯 다정한 옹기들 옆에 신사가 있다는 것이 참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간혹 거주민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손이 문드러진 분, 얼굴 한쪽이 일그러진 분…, 하지만 다들 건강하고 밝아 보였다.
우리는 서로 큰소리로 밝게 인사를 나눴다. 슬픔의 숲 ‘수탄장’을 지났다.

병원에는 들어가지는 못하고 일제때 한센병 환자들을 대상으로 시체해부를 했던 검시실, 일본인들이 원하는 대로 하지 않으면 잡아가두던 감금실, 2세를 볼 수 없도록 강제 단종하던 단종실을 둘러 보았다.
멀리 십자봉에서 손발이 닳고 떨어져 나가는 고통을 감내하며 큰 바위를 토목 작업하여 날라야 했던 그때 그 시절의 우리나라 한센병 환자들….
세계 제일가는 한센병 지역을 만들겠다는 미명 아래 강제노역을 부리고 노동을 착취한 4대 일본인 수호원장 덕(?)에 소록도는 아름다웠다.

처음에는 산책 같은 느낌이었는데 1945년 이전의 그들을 보고 나니 가슴이 아팠다. 시렸다.
그곳의 멋드러진 나무 한 그루, 돌이나 바위 하나가 예사로 보이지 않았다. 고통이고 절규이며 인내이고 눈물이었다. 왔던 길을 되돌아 녹동 선착장에 도착했다.
이 뱃길도 이제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녹동과 소록도를 잊는 다리가 완공된 상태이다. 곧 개통이 되면 일반인과 소록도의 거리가 더 가까워질 테다.
그들의 소통이 아무 탈 없이 잘 이루어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안고 나는 다시 거제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