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록도에서 찾은 행복
소록도에서 찾은 행복
  • 금대현 명예기자
  • 승인 2007.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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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강산이 엄마 출발합시다.” 오늘은  거제시 자원봉사협의회 주최로 선진지 견학이 있었다. 장소는 전라남도 장흥군에 위치한 소록도.

졸린 눈을 부비며 도착하니 벌써 많은 분들이 와 계셨다. 서둘러 인사를 마치고 자리에 앉자 차는 벌써 출발을 했다. 어딜 가든 여행이란 건 설렘이 있다. 항상 바라보는 차창 밖 거제전경이건만 오늘은 뭔가가 다르다. 더 새롭고 멋져 보인다.

진주 사천을 거쳐 순천 보성을 지나 장흥에 도착했다.  장흥에 도착해 가이드가 유자가 유명한 장흥이라고 자랑하며 소개하자, 우리는 거제유자가 더 원조라며 아이들 같은 시비가 붙었다.

녹동선착장에 도착하니 소록도가 코앞이다. 배로 약10분이면 도착할 수 있을 만큼 가깝지만 녹동인과 소록도인의 마음의 거리는 70년의 오랜 세월동안 닫혀 있었다. 소록도는 나환자촌으로 유명한 곳이다. 한센병 환자들의 강제 집단 거주지였다.

그들의 삶이고 병원이며 죽음까지 이곳에서 마무리된다. 1916년 5월-개원하여 700명의 원생이 1945년에는 거의 7000명에 육박했다가 해방이 되고 난 후 현재는 630명 정도가 살고 있다고 한다.

선착장에서 큰 병원이 있는 중앙동까지 가이드의 안내를 들으며 걸어갔다. 산책 같은 느낌이었다.

공장이나 개발하고는 상관없는 곳이니만큼 그곳의 자연은 정말 무공해 그 자체였고 바다와 나무들이 그저 시원하고 아름답게만 보였다. 간간히 보이는 집들은 일제시대 때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기와처럼 보이는 지붕은 우리의 기와와는 다른 일본의 냄새가 있었다.

그 일례로 신사가 버젓이 자리하고 있었다. 지금은 문화재로 보존하고 있다고 하지만 어느 집 지붕에 옹기종기 도란도란 얘기를 하는 듯 다정한 옹기들 옆에 신사가 있다는 것이 참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간혹 거주민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손이 문드러진 분, 얼굴 한쪽이 일그러진 분…, 하지만 다들 건강하고 밝아 보였다.

우리는 서로 큰소리로 밝게 인사를 나눴다. 슬픔의 숲 ‘수탄장’을 지났다.

이미 감염된 자녀와 환자 부모가 한 달에 한 번 멀리서 눈으로만 바라봐야 했던 탄식의 장소이다. 이곳을 지나면 좀 더 증세가 심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고 한다.

병원에는 들어가지는 못하고 일제때 한센병 환자들을 대상으로 시체해부를 했던 검시실, 일본인들이 원하는 대로 하지 않으면 잡아가두던 감금실, 2세를 볼 수 없도록 강제 단종하던 단종실을 둘러 보았다.

멀리 십자봉에서 손발이 닳고 떨어져 나가는 고통을 감내하며 큰 바위를 토목 작업하여 날라야 했던 그때 그 시절의 우리나라 한센병 환자들….

세계 제일가는 한센병 지역을 만들겠다는 미명 아래 강제노역을 부리고 노동을 착취한 4대 일본인 수호원장 덕(?)에 소록도는 아름다웠다.

거제 외도 보다 소록도가 더 아름답다는 가이드의 당찬 말이 괜한 말이 아니었다.  소록도는 그야말로 한센병 환자들의 피와 눈물로 이룩된 곳이었다.

처음에는 산책 같은 느낌이었는데 1945년 이전의 그들을 보고 나니 가슴이 아팠다. 시렸다.
그곳의 멋드러진 나무 한 그루, 돌이나 바위 하나가 예사로 보이지 않았다. 고통이고 절규이며 인내이고 눈물이었다. 왔던 길을 되돌아 녹동 선착장에 도착했다.

이 뱃길도 이제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녹동과 소록도를 잊는 다리가 완공된 상태이다. 곧 개통이 되면 일반인과 소록도의 거리가 더 가까워질 테다.

그들의 소통이 아무 탈 없이 잘 이루어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안고 나는 다시 거제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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