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길을 오르다가
산길을 오르다가
  • 거제신문
  • 승인 2015.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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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수인/시인·수필가

 길은
 마음속에서 모두 평행이다
 
 나무들마저 비켜선 좁은 언덕을
 바람이 먼저 지난다
 
 <중략>
 
 걸어도 걸어도
 살아 움직이는 잎새
 발목을 잡고 안간힘을 쓰다
 문득, 건네받은 바람의 꼬리표,
 
 툭,
 산그늘로 내려앉는 
 
 훔쳐보던 나뭇잎이 파르르
 입술을 떨고
 활시위처럼 팽팽해진  
 
 나는 
 하산을 서두른다

·시 읽기: 종합문예지 '문장21' 통권28호(2015, 봄호)에 실린 시의 일부이다. 이 시에서 시적 화자는 자연에 동화된다. '물아일체(物我一體)의 시'라고 말한다면 비약일까. 화자가 자연(物)과 하나가 되고자 하는 심상임은 분명해 보인다.
 시적 화자는 산에 오르고 있다. 그 오르는 모든 길이 평행이라고 마음속으로 여길 쯤, 길옆으로 나무들마저 비켜서 있는 좁은 언덕에 바람이 먼저 지나간다. 산길을 걷고 걸어도 살아서 파닥거리는 나뭇잎이 화자의 발걸음을 붙잡는다. 이때 화자는 '깨달음'을 포함한 다의적인 의미가 담긴 '바람의 꼬리표'를 건네받는다. 때마침 해가 기울여져 툭 하고 산그늘이 내려앉는다. 나뭇잎이 파르르 입술처럼 떨고, 화자의 마음은 다급해져 활시위처럼 팽팽하게 긴장하며 서둘러 산을 내려온다. 이 시처럼 자연과 내가 하나 되는 물아일체를 경험해봄도 좋을 듯하다.      (문학평론가 신기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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