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허정승이라는 노인이 집안에 액운이 들어 아내 죽고 자식 죽고 젊은 며느리와 가난하게 살았다.
아들이 죽은 후로는 통 바깥출입을 않고 지내다가 '이렇게 살게 아니라 그래도 세상 구경이라도 한 번 하고 죽어야지' 하여, 하인을 데리고 외출을 했다. 들로 나가니 큰 정자나무 밑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어험, 이 사람들 뭐하는가?" 노인이 점잖게 물었더니 "마침 용한 점쟁이가 와서 점을 치고 있습니다" 하고 모였던 사람들이 일러줬다.
노인은 용한 점쟁이라는 말에 자기도 점을 보고 싶었으나 양반 체면에 직접 가서 점을 볼 수는 없고 해서 하인에게 돈 석 냥을 주며 점을 쳐오게 하고는 자기는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점쟁이의 점괘는 단지
"제비가 떨치거든 마시지를 말아라."
"금강산 모퉁이를 돌아가면 중의 자식을 사랑해라" 하는 단 두 가지였다.
노인이 집으로 돌아오자 며느리가 곱게 단장을 하고 술상을 들고 들어왔다. 며느리가 잔에 술을 붓자 갑자기 어디선가 제비가 날아오더니 술을 떨치고 날아갔다. 노인은 점쟁이의 말이 생각나서
"아가, 바깥에 나갔다 왔더니 너무 피곤하구나. 좀 쉬었다가 마실게, 그냥 나가서 네 볼 일이나 보거라."
며느리가 나가자 노인은 그 술을 개에게 먹였더니 죽어 버렸다. 젊은 며느리가 개가를 하려고 하니 시아버지가 마음에 걸려 시아버지를 죽이려고 술에 약을 탄 것이었다.
다음 날 노인은 며느리를 불렀다.
"아가, 금강산이나 다녀와야겠다. 의복이나 몇 벌 싸다오."
며느리는 시아버지가 아직까지 살아 있는 것이 이상했으나 시아버지가 가고 나면 개가해 버리겠다고 생각하고 얼른 옷을 몇 가지 싸 드렸다.
노인은 전에 가 본 적이 있는 강원도 금강산으로 갔다. 길도 험하고 해서 쉬어 가려고 커다란 돌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저쪽에서 스무 살쯤 되어 보이는 어떤 총각이 육자배기를 하며 다가와서는 인사를 한다.
"어디 가시는 길인지요?"
"저 위에 절에 간다네."
"저희 집이 저 절 밑에 있는데 계실 곳이 마땅찮으시면 저희 집에 묵으시지요?"
노인은 점쟁이의 말이 생각나서 총각을 따라갔다. 거기는 주막이었다.
"어머니, 손님 오셨어요. 술상이나 내 주세요."
그러자 한 60쯤 되어 보이는 노파가 술상을 들고 왔다. 술을 먹고 밥을 먹었더니 그렇잖아도 피곤했는데 깊이 잠이 들었다. 한밤이 되었는데 노파가 다시 술상을 차려 노인의 방에 들어왔다.
"노인장, 일어나셔서 술이나 한 잔 잡수시지요."
"어허, 그럽시다."
두 노인이 주거니 받거니 잔을 비우다가 노파가 말하기를
"한 이십년 전에 여기를 지나간 적이 있지요?" 하고 물었다.
"내가?"
허정승이 얼른 기억을 못하고 고개만 갸웃거리자
"그날 밤 저하고 주무셨지요. 오늘 낮에 본 그 애가 바로 영감님 아들입니다. 전부터 이 여관을 그만두고 동네로 내려가려고 했으나 행여나 이 길을 지나시다가 찾아오시리라 믿고 여태껏 객주로 지내고 있지요"
이리하여 허정승은 아내와 아들을 동시에 얻고 여관을 팔아 거제로 돌아왔다. 젊은 며느리는 남자 따라 이미 개가하고 없었다. 노인은 아내가 가져온 돈으로 논밭을 사고 행복하게 살았다고 한다.
정리 : 윤일광(詩人) (자료 : 거제향토문화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