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영감과 할멈이 살고 있었는데 이야기라고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살았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해도 할 이야기가 없었다. 하루 종일 그냥 쳐다보는 것으로 하루를 보내고 했다. 저녁이 되어 할멈이 "영감, 이박(이야기)이나 하나 해 보소" 하고 재촉하면 "할 이박이 있어야 하제, 할멈이나 이박 하나 해봐라."
"나도 어디 이박이 있어야 하제. 그럼 영감이 어디 가서 이박을 사 오소."
"이박을 사 온다고?"
"다른 사람에게 이박을 듣고 와서 하모 되지요."
그래서 다음 날 영감은 쌀 서 말을 지고 이야기를 사려 나섰다. 이야기를 잘 하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하고 찾다가 날이 저물어 어느 집에 들어가 "날도 저물고 하니 하룻밤 자고 갑시다" 하고 청을 하니 주인이
"자고 가는 것은 좋은데 우리 집에는 양식이 다 떨어져 해 드릴 밥은 없으니 굶어도 좋으면 잠은 재워 드리지요."
"그럼 이렇게 합시다. 마침 나에게 쌀 서 말이 있는데 저녁에 이박만 한 자리 해주면 이 쌀을 드릴 테니 걱정 마시오."
그렇게 해서 영감은 그 집에서 하룻밤을 자게 되었다. 집 주인은 양식이 떨어져 쌀 서 말이 탐이 났지만 이야기하고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아침이 되어도 주인은 이야기 한 자리를 하지 않아 영감은 쌀 서 말을 지고 다시 나서려는데, 마침 냇가에 황새가 고동이라도 잡아먹으려고 기웃거리고 있었다. 주인은 그냥 하는 소리로 "(황새가) 성큼성큼 걸어오는구나!"영감은 그 소리가 이야기인줄 알고 얼른 "성큼성큼 걸어오는구나!" 하고 되받아 말했다.
"기웃기웃 하는구나!" 그러자 영감도 "기웃기웃 하는구나!"
"(황새가 고동을) 꾹 집어 달리는구나!" 이번에도 영감은 "꾹 집어 달리는구나!" 따라 했다.
주인이 황새를 보고 한 말인데도 영감은 이야기로 알아 듣고 좋아하며 쌀 서 말을 주인에게 주고 집으로 돌아왔다.
"영감, 이박 사가지고 오셨소?"
"그럼, 사왔제. 오늘은 저녁밥을 일찌감치 묵고 내가 사온 이박이나 들으시게."
할멈은 이야기가 기대되어 저녁밥을 일찍 지어 먹고 이불 밑에 누웠다. 마침 그때 도둑놈이 도둑질 하러 와서 살그머니 집안 사정을 살피고 있었다. 도둑은 그냥 도둑이 아니고 화적이라 사람도 죽이고 다 빼앗아가는 무서운 놈이었다.
"영감, 어디 쌀 서 말 주고 사 온 이박이나 한 번 해 보소" 하자 영감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성큼성큼 걸어오는구나!"
바깥에 있는 도둑이 깜짝 놀랐다. 마치 그 말이 자기보고 하는 말 같았다. 도둑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데 안에서 또 한다는 말이
"기웃기웃 하는구나!" 하고 큰 소리를 쳤다.
'이크! 내가 여기 있는 걸 아는 모양이구나.' 도둑은 제 발 저려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아무거나 손에 집히는 대로 들고 도망치려고 하는데 또 방 안에서 한다는 소리가 "꾹 집어 달리는구나!" 하지 않는가.
도둑은 그만 도둑질도 못하고 "아이고, 천기를 보는 사람이 있는데 어찌 도둑질을 하겠나" 하며 줄행랑을 쳤다. 바깥에 도둑 중에 도둑인 화적이 왔다가 간 줄도 모르고 영감 이야기에 할멈이 좋아서 손뼉을 치며 웃고 있었다. 쌀 서 말이 화적을 막았다는 이야기가 동부면에서 전해지고 있다.
정리 : 윤일광(詩人) (자료 : 거제향토문화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