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 가난해 남의 집에 머슴을 사는 청년이 있었다.
아버지를 일찍 여읜 청년은 머슴을 살아 받는 새경(私耕)으로 어머니를 봉양했다. 그러던 중 어머니는 깊은 병에 걸렸다. 청년은 어려운 가운데도 어머니의 병 수발을 열심히 들었지만 가난한 탓에 약 한 첩 제대로 쓰지 못하고 돌아가시고 말았다.
가난한 청년은 어머니를 지게에 짊어지고 좋은 곳에 묻어주기 위해 집을 나섰다. 그러나 어디가 좋은 터인지 알 수 없었던 청년은 자기 생각에, 나무꾼들이 나무를 해오다가 쉬는 곳이 좋은 터라고 생각했다. 나무꾼들이 나무를 지고 내려오다가 쉬는 자리는 늘 정해져 있었다.
세 번을 쉬게 되는데, 높은 고개를 넘어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오는 산등성이에서 처음 쉬고, 잔디가 넓게 펼쳐진 터에서 두 번째 쉬고, 마을로 들어오는 입구에서 마지막으로 쉬면서 담배를 한 대 피웠다.
처음에는 동네 입구에 어머니를 묻을까 생각하고 거기에 갔는데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곳이라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두 번째 쉬는 곳으로 갔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앞산이 막혀 답답해 보였다.
청년은 다시 어머니를 지게에 쥐고 나무꾼들이 첫 번째 쉬는 산등성이로 갔다. 산이 높고 험하긴 해도 앞이 툭 트여 있고 바람도 잘 드는 게 앞의 두 곳보다는 마음에 들었다. 청년은 어머니를 얹은 지게를 조심스럽게 내리려는데 지게 다리가 돌부리에 걸려 뒤뚱하더니 그만 지게 위에 있던 어머니의 시신이 산등성이 아래로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깜짝 놀란 청년이 아래로 굴려 내려가는 어머니의 시신을 따라 내려갔다. 산등성이의 비탈이 심했던 탓에 어머니의 시신은 한참을 굴려가 약간 평평한 곳에 이르러 시신이 엎어진 채로 멈추어 섰다. 어머니의 시신을 다시 산등성이까지 옮기기가 쉽지 않을 만한 거리였다.
어머니를 좋은 곳에 묻어드리겠다고 이렇게 높고 깊은 산에까지 옮겨왔는데 생각과 다르게 엉뚱한 곳에 묘를 쓰게 될 처지였다. 그러나 이미 날도 저물어가고 산등성이까지 모시고 올라갈 처지가 아니라서 그냥 엎드려 누운 어머니의 시신 위에 흙만 끌어 모아 작은 분상을 만들어 놓고 돌아왔다.
청년은 묘를 쓴 자리도 마음에 들지 않거니와 어머니를 엎어 뉘어 묻었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다시 가서 엎어진 어머니를 바로 누이기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남의 집에 머슴을 사는 처지라 시간을 내는 것도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다가 그럭저럭 시간은 지나갔고, 어머니의 묘에 대한 생각도 차츰 잊혀져 갔다. 그런데 어머니를 묻고 난 다음부터 어떻게 된 일인지 청년은 하는 일마다 술술 풀렸다. 새경 받은 돈으로 돼지새끼라도 사 놓으면 그게 자라 새끼를 남들보다 두 배나 많이 낳았고, 헐값으로 산 자갈밭의 자갈이 오히려 돈이 되어 많은 이익을 가져다주기도 했다.
청년은 점점 재산이 늘어나 머슴일도 그만 두고 오히려 머슴을 부려야 할 정도였다. 돈이 있으니 예쁜 색시도 얻고 집도 잘 지어 떵떵거리게 됐다. 그래도 마음에 걸리는 것이 어머니 묘라 이제는 어머니 묘를 좋은 곳에 옮겨 줘야겠다고 생각하고 풍수를 데리고 어머니의 묘에 갔다.
그런데 어머니의 묘를 본 풍수가 "이 터에는 시신을 엎어 묻어야 자식이 번창하는 곳이오" 하고 손도 못되게 했다. 만약 엎어진 시신을 바로 뉘면 망할 수가 있는 곳이라 했다. 어머니를 편하고 모시려고 했던 청년은 그냥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청년이 부자가 된 것은 어머니의 덕이었다.
정리 : 윤일광(詩人)(자료 : 거제향토문화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