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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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제신문
  • 승인 2015.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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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 요나스 요나손 作

▲ 김희성(45·수월동)
기자와 PD로 오랜 세월 일해 온 작가의 늦깎이 데뷔작인 이 소설은 '백 세 노인 현상'을 일으켰다. 1905년 스웨덴의 한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주인공이 살아온 백 년의 세월을 코믹하고도 유쾌하게 그린 작품이다.

급변하는 현대사의 주요 장면마다 본의 아니게 끼어들어 역사의 흐름을 바꿔 놓는 주인공의 활약은 독자로 하여금 역사의 생생한 현장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한다.

스웨덴의 한 소읍 양로원에서 백살 생일 파티를 앞둔 알란은 창문을 넘는다. 그는 남은 인생을 즐기기로 한 것이다. 처음 간 버스 터미널에서 그는 한 예의 없는 청년의 트렁크를 충동적으로 훔치고, 돈다발이 가득 차 있었던 트렁크로 인해 큰 말썽이 벌어지게 된다. 어쩌다 사람을 죽이고, 길에서 만난 코끼리 무리와 함께 술을 마시고 느긋한 시간을 보내다 여객기를 전세 내 발리로 떠난다.

노인의 도피 과정에서 겪는 모험과 쌍을 이루는 다른 한 축은 그가 살아온 백 년의 이야기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여의고 일찍이 폭약 회사에 취직했던 알란은 어머니마저 돌아가시자 세상을 한 번 둘러보는 것도 좋겠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고향을 떠나간다.

10대에 배운 폭약기술로 폭탄 실험 중 이웃이 사망하자 정신병원에 수감되더니 48세에 수용소를 탈출해 북한으로 와 한국전쟁당시의 김일성, 김정일을 만나 위험에 처하지만 마오쩌둥의 도움으로 위험을 벗어난다. 60대엔 미국 CIA요원으로 일하며 러시아 과학자 포포프를 미국첩자로 포섭하여 냉전시대 종식의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앞장을 다시 넘겨보게 만드는 작가의 유쾌하고 영리한 유머가 요즘같이 우울한 뉴스로 가득한 시기에 청량제와도 같은 역할을 해줬다. 특히 못 말리는 영감님 알란의 대책 없지만 용감한 여정은 나를 영감님의 발걸음 속도에 맞춰 그의 100년 인생을 숨차게 따라가며, 현대사 100년을 함께 둘러본 것 같았다.

알란의 인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건 어머니의 메시지였다. '세상만사는 그 자체일 뿐이고, 앞으로도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 자체일 뿐이란다' 세상만사는 그 자체이고, 나는 나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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