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정의 달 5월엔 그와 관련한 각종 기념일이 즐비하지만 아직도'부부의 날'은 다소 생소하고 어떻게 기념하고 챙겨야 될지 기준이 잘 서지 않는 게 사실이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면 '어린이 날'이나 '어버이 날'보다 훨씬 중요한 게 '부부의 날'이 아닌가 싶다. 부부 사이가 원만하고 사랑으로 넘치면 5월의 모든 날들이 행복할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오히려 불화와 상처만 남을 것 같다.
예술가들도 가정을 이루고 살기 때문에 부부사이 교감의 정도에 따라 창작활동이나 삶에 끼치는 영향이 지대할 것이라 여겨진다.
18세기 이후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회화 영역에서는 많은 거장들이 명멸했지만 조각 분야에서는 경쟁자를 찾기 어려울 만큼 독보적인 인물이 있다. '생각하는 사람'으로 잘 알려진 오귀스트 로댕이 그 주인공이다. 기껏해야 건축물의 부속품에 지나지 않던 조각을 예술의 경지로 이끌어 낸 이가 바로 로뎅이다.
근대 조각의 선구자 로댕은 1840년에 태어났다. 24살이 되던 1864년, 평생의 반려자가 된 로즈 뵈레를 만나게 되는데 공교롭게도 그 해 12월에는 훗날 로댕의 일생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친 까미유 끌로델이 태어난 해이기도 하다.
'까미유 끄로델'은 자전적 소설이나 영화로도 많이 소개되어 또 다른 유명세를 탔지만 이때 만해도 24년 연상의 로뎅과 연인으로 엮이리라고는 그 누구도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까미유는 뛰어난 미모와 명석한 두뇌를 가졌지만 소아마비를 앓아 약간의 신체적 핸디캡을 가지고 있었는데 어린 시절부터 엄마와 원만하지를 못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연히 로댕의 문하에 들어가게 된 까미유는 숨어 있던 재능을 드러내며 로댕과 불꽃같은 사랑을 나누게 된다.
로댕의 작업에도 깊숙이 관여해 제자를 넘어 까미유의 영감이 로댕의 작품 속에 스며들게 되는 동지적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로댕은 평생을 통해 작품활동을 위해 만나게 되는 많은 여성들, 특히 모델들과 끊임없이 염문을 뿌렸지만 까미유 끌로델의 경우는 많이 달랐다. 단순히 외도라고 보기에는 영육간 교감이 깊었던 것이다.
사실 이 정도 얘기는 세계적인 조각가가 아니라도 우리 주변에서 허다히 들을 수 있는 얘기다. 동서를 떠나 과거 남녀 관계가 남성 중심으로 전개되던 시기엔 가장 일반적인 스토리라인이 아닌가 싶다. 이 시점 쯤, 가슴을 쥐어뜯으며 남편이 제 자리로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비련의 여주인공이 있을텐데, 여기선 앞에서 언급했던 로즈 뵈레이다.
첫 만남에서 로댕에 흠뻑 빠졌던 뵈레는 그와 동거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로댕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기로 결심한다. 그래서였는지 허름하고 냄새나는 마구간을 리모델링해서 만든 신혼집에서의 생활을 기쁜 마음으로 함께하였고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때에 로댕을 위해 돈벌이에 나서기도 했다. 모델을 구하기 어려울 때는 추운 겨울 불도 없는 방안에서 누드모델을 해주기도 했다.
로즈 뵈레와의 만남은 로댕에게도 마음의 안정을 찾는 계기가 되었고 이 시기에 로댕은 모네, 르느와르, 세잔 등의 인상파 작가들과의 교류를 통해 예술가로서 새로운 입지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까미유 끌로델에 가려 제대로 인정받진 못하지만 로즈 뵈레의 내조는 까미유 끌로델 못지않게 작업의 영역에서도 많은 공감을 나눌 수 있는 사이였다.
하지만 로즈 뵈레는 로댕의 여인으로 평생을 함께하고 또 그를 위해 그의 작품을 지켜주었지만 로댕은 그녀에게 동거인 이상의 지위를 부여하지 않았다. 결국 로댕이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회복한 뒤 병상에 있는 자신을 지켜준 유일한 여성이 로즈 뵈레라는 사실을 안 후에야 공식적인 부부의 관계를 인정해 주고 그녀와 그들의 아이에게도 로댕이란 이름을 인정해 주었던 것이다.
50여년 세월이 흐른 후에 완성된 이름, 로댕 로즈 뵈레. 그녀는 시대를 앞서간 위대한 예술가 로댕의 뒤를 지켜주고 그의 예술적 완성을 가능하게 한 진정한 연인이었다.
이런 이야기가 요즘 얼마나 가슴에 와 닿을지 모르겠지만, 둘이 하나가 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화학적 결합으로만 가능한 이 비법의 묘약은 예나 지금이나 '사랑'밖에 없다.
그래서 5월은 '가정의 달' '사랑의 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