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월11일 현재 옛 서문마을이 있었던 거제시청 일대 모습

1950년 6월25일 비운의 역사를 남긴 6.25 한국전쟁이 일어났다.
한민족이 총칼로 동족상쟁의 사상전을 벌였다. 그때의 이념 전쟁은 아직도 그 상처가 아물지 않은 채, 남북이 분단돼 이산가족의 아픔과 혈육의 상처가 남아 있다. 65년의 세월이 흘렀다. 인생 한평생이 다 흘러갔지만 그날의 아픈 상처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남아 있다.
6월이 되면 되살아나는 동족상잔의 혈육전이 어제 일같이 느껴진다. 곳곳에 많은 상처의 흔적들이 남아 있지만 거제도는 17만3000명의 포로와 15만에 가까운 피난민이 생명을 구한 곳이다.
포로수용소가 처음 생길 때 촬영한 흑백 사진은 서문마을에서 상동으로 보고 촬영한 사진이다. 낡은 흑백사진 속에 가물거리는 옛 모습에서 그 당시의 생활상을 느끼게 한다.
나지막한 초가집이 옹기종기 모여 있고 돌담장 사이로 좁은 마을길이 보인다. 그 당시 서문마을은 약 35호 정도가 살았다고 한다. 그 너머로 텐트를 친 포로수용소 막사가 보인다. 고현지구는 6단위 수용소로 제일 먼저 생긴 지역이다.
초가삼간에서 생활 할 때 흥남에서 피난민이 몰려와서 주민보다 더 많았다. 그때 마을사람들은 잘 방과 먹을 음식을 제공했다. 봄이 되면 보리 갱죽도 먹기 어려울 때 서로 나눠 먹었던 거제사람들의 정다운 마음과 인심이 초가지붕 위로 연기처럼 피어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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