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영종/ '문장21' 시 등단
서울행 고속 열차 떠나간 자리
구포역에 남겨진 사람들
추월 후에 오는 다음 열차 기다린다
우리는 대구행 무궁화호
비둘기가 무궁화로 핀
기막힌 생의 감동으로
실감 나게 스스로에게 치는 박수
좁은 칸칸 들어찬 동시대의 삶들
원동,삼랑진 지나갈 때 삶의 노래 퍼지고
굽이굽이 쉬어 가는 완행의 길
생의 여유려니 감사하며
식은 도시락을 까먹는 사이
커다란 굉음의 서울행 고속 열차
쏜살같이 지나간다
추월을 허하기 위해 오늘부로
문을 닫는다는 완행역
추월의 세계가 또 절망으로 피는 시간
말라 버린 무궁화 씨앗을 토해 내는 사람들 위로
해가 지기 전에 달이 먼저 뜨고
밝은 태양빛에 힘겨운 달빛이 서러워도
희망으로 모여드는 완행역의 사람들
·시 읽기: 종합문예지 '문장21' 통권29호(2015, 여름호)에 실린 시이다. 시적 화자는 부산발 대구행 무궁화호 열차를 타고 구포역에 정차하고 있다. 이유는 구포역을 경유하는 서울행 고속 열차(KTX)가 추월한 뒤 출발하기 위함이다. 이때 "커다란 굉음의 서울행 고속 열차/ 쏜살같이 지나간다"라며 빠르게 추월하는 장면을 통해 "추월의 세계가 또 절망으로 피는 시간"이라며 결코 빠른 것만이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표현한다. 결행의 "희망으로 모여드는 완행역의 사람들"처럼 느림의 미학이 더 사람 냄새가 나는 법이다. 이처럼 빠르게만 외치며 타인을 추월하고자 하는 경쟁 심리를 잠시 접어 봄도 좋을 듯하다. (문학평론가 신기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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