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족상쟁의 비극, 6.25전쟁 65주년을 맞아
동족상쟁의 비극, 6.25전쟁 65주년을 맞아
  • 이승철 그루터기 기자
  • 승인 2015.06.25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추억의 사진으로 보는 옛 고현의 어제와 오늘 ②

▲ 6.25전쟁 당시 주민 10만명이었던 거제도는 포고 17만3000명, 피난민 15만명이 목숨을 구했다. 당시 양정지구 수용소.

6월이 되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민족상쟁의 피비린내 나던 비참한 싸움의 상흔이 우리들 기억 속에 사라지지 않고 밤안개처럼 피어오른다.

한민족끼리, 부모와 형제가 총부리를 서로 맞대고 살생을 했던 그 시절을 돌이켜 보면 왜 그렇게 하고 살았어야 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그 시대를 되돌아보게 된다. 좁은 강토에서 유구한 역사 속에서도 분쟁과 싸움이 계속돼 왔던 민족이었기도 하다.

아직도 분단의 역사 곳곳에 자유와 민주주의 이념으로 대립하고 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긴장감은 6월이 오면 다시 생각난다.

▲ 6.25전쟁 당시 주민 10만명이었던 거제도는 포고 17만3000명, 피난민 15만명이 목숨을 구했다. 당시 수월지구 수용소의 모습.

6.25 전쟁으로 인해 270만명의 인명 피해가 났고 63만채의 가옥이 불탔으며 철도와 전기·통신 두절을 비롯해 전 국토가 초토화 됐다. 미국과 영국 등을 비롯해 18개국 참전용사와 한국장병 등 78만명이 희생됐고 1만4300명이 북한의 포로가 됐다.

당시 주민 10만명이었던 거제도는 포로 17만3000명, 피난민 15만명의 목숨을 구했던 곳이다. 포로수용소가 건립되면서 폭동 사건으로 포로를 감시하던 돗드 준장이 포로들에게 납치되는 사건도 발생했다.

수용소 안에서는 반공과 공산주의 이념 때문에 매일같이 사상자가 발생했다. 한국의 자유를 갈망하던 대부분 반공포로 청년들이 공산 포로들에게 인민재판으로 사살됐다.

그 역사의 현장이 고현과 수월·해명·제산마을이다. 그때 그시절의 사진을 보면서 지난날의 역사를 되돌아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지나가다 2015-06-25 15:06:38
기사 잘 봤습니다.
625 전쟁을 동족상쟁으로 표현하는 경우는 처음봅니다.
틀린 단어는 아니나 "같은 겨레나 같은 혈족끼리 서로 싸우고 해침" 의 뜻을 가진
"同族相殘" 을 사용해야 그 의미가 더 정확히 전달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