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대국으로 급부상한 중국보다 한국의 젊은이들이 미래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가 더 많다는 보고서가 눈길을 끈다. 도전의 기회가 박탈당한 한국의 젊은이들이 비관의 늪에 빠져 있을 때 1990년대 이후 태어난 중국의 젊은이들은 진취적이고 25세 이전에 창업 사례가 늘고 있다고 한다.
한국의 25세는 어떤가? 군대의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경제적으로는 아직 어린아이 취급받고 있다. 그나마 취업한 곳이 서비스업이나 관광업, 단순 노무직, 음식점 등의 아르바이트 자리인데 이마저도 불균등한 처우로 위태롭다. 기업이나 사회적 '갑질논란'은 청년들에게는 성장의 흐름을 막고 사회적 선순환을 막는 악재다.
청년실업을 해결하기 위해 일자리 66만개를 만들겠다고 정부와 정치인들은 장담하지만 도대체 그 일자리는 어디에 있는지 캄캄하다. 너도 나도 치열하게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과는 실망스럽다. 미국 갤럽이 각 나라의 '웰빙지수'를 조사한 적이 있는데 조사대상 145개국 중 우리나라는 117위를 기록했다. 삶에 대한 개인의 만족도는 목표가 뚜렷하고 안전한 환경 속에 살아가며 건강한 삶을 이어갈 때 높아진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라크와 비슷하고 내전을 겪고 있는 남수단보다 순위가 낮게 발표 되었다. 국민총생산이 500달러에 불과한 가나는 평균수명이 49세에 불과하지만 우리보다 행복한 자존감으로 살고 있다고 하니 우리가 너무 빡빡한 삶을 살고 있지 싶다.
청년이 힘든데 우리의 미래가 나아지리라 손 놓고 기대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실패와 좌절을 이겨내고 상대적 박탈감을 해소하고 안전한 사회적 관계망이 확보된 공정한 경쟁이 보장된 나라에 우리 청년을 살게 할 의무는 국가요, 정치요, 그 중심에 있는 나이 든 세대들이다.
나이 든 세대들이 분노에 차 있는 젊은 세대들의 삶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해줘야 한다. 지금의 나이 든 세대들은 누구의 가르침이나 도움 없이 스스로 꿈을 키우고 자립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요즘 젊은 사람들을 두고 의지가 약하다고만 한다. 세상 탓만 하고 있다고 나무란다. 알아서 스스로 해 보라는 믿음은 없고 고생도 못해 본 "너희들이 뭘 알겠느냐"라는 식으로 무시한다.
나이 서른이 넘어서야 경제적 자립과 결혼을 준비하는 청년들은 불균형적인 기회와 스펙경쟁에 항상 노출되어 불안하고 어려운 처지에 놓인 불완전한 세대다. 이런 청년을 돕고 이해하며 길을 터주는 것은 곧 이 나라의 미래와 나이 든 사람들의 노후를 위한 길이기도 할 것이다.
과거와 현재 미래가 순조롭게 이어지고 시대와 시대가 원활한 흐름이어야 그 나라가 건강하다. 미래를 바라보는 현재가 단단하여 믿음직스럽고 중장년층을 바라보는 청년이 건강하고 활동적이어야 그 사회는 희망이 있다고 할 것이다.
모든 세대가 지쳐 있기는 매 한가지다. 모든 사회 관계망들이 얽히고 설켜 제자리를 찾기 힘들 정도다. 아이 낳는 것이 부담스러운 사회,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이 손 내밀 곳이 부족한 사회, 안전을 스스로 염려해야 하는 나라에서 믿을 것은 사람 밖에 없다. 나이 든 사람은 젊은 사람을 보살피고 끌어주며 젊은 사람들은 분노를 긍정적인 힘으로 바꾸는 노력이 필요하다.
온 시대가 아프다. 누가 누굴 돌봐주기를 바라기도 힘든 시절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들이 아파할 때 함께 토닥여 주고, 그들이 아픈 속을 이야기할 때 함께 들어주고, 소리 낼 때 함께 고함치고, 노래할 때 뜨겁게 손을 잡고, 그저 함께하고 아파해야 비로소 어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