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할머니의 음성은 높지 않으면서 부드럽고 정다운 다독거림이 묻어 있다. 언어생활은 얼굴이나 표정, 몸짓으로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중에서도 입으로 말하고 귀로 듣는 음성언어활동이 중심이 된다.
지금부터 24년 전인 1991년 1월 29일, 서울 압구정동에서 유괴당한 9살 이형호 어린이가 44일 후 한강 배수로에서 싸늘한 사체로 발견됐던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을 모티브로 한 팩션영화 '그놈 목소리'는 아이를 납치한 범인의 소름끼치게 냉정한 그놈의 협박 목소리를 주인공으로 설정한 영화였다.
요즘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보이스 피싱'의 경우에도 속아 넘어갈 수밖에 없는 결정적인 요인이 진정성과 설득력을 가진 차분하고 정돈된 목소리가 한몫하기 때문이다.
피싱 속의 목소리가 '뚝배기 깨지는 소리'거나, '대꼬챙이로 째는 소리'거나, '고자 힘줄 같은 소리'거나, '뜨물 먹은 당나귀소리'거나, '모주 먹은 돼지소리'거나, '모기만한 소리'라면 쉽게 믿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마다 다양한 목소리를 가지고 있지만, 여성의 매력적인 음성은 첼로와 같이 조용한 그러나 묘하게 깊은 음성(로오렌스의 詩 '날개 돋힌 뱀'에서)이라면, 남자의 매력적인 음성은 가슴 한 복판을 울리며 나오는 바리톤(심훈의 소설 '상록수'에서)일 것이다.
최근 연예인 지망생이나 취업준비생 등 젊은 층에서 이른바 '목소리 성형'이 유행이라고 한다. 성대 근육에 보톡스 주사를 놔서 중저음의 목소리를 만든다는데 목소리를 통해 건강상태를 진단할 뿐 아니라 얼굴로 판단하는 관상(觀相)보다 목소리로 판단하는 음상(音相)이 대인관계에서 더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