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년 만에 다시 찾아온 포로수용소
61년 만에 다시 찾아온 포로수용소
  • 이승철 그루터기 기자
  • 승인 2015.08.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반공포로의 삶 다룬 다큐멘터리 '귀향' 주인공 3명 거제 촬영

거제시는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을 세계문화유산의 관광자원으로 만들기 위해 포로수용소 비화에 대한 영화를 제작하고 있다.

제3국으로 간 포로가 61년 만에 찾아온 포로수용소 비화에 대한 영화촬영은 지난 6일부터 9일까지 포로수용소 유적공원 일원에서 진행됐다.

이 영화는 조경덕 감독이 당시 포로의 증언과 현존하고 있는 포로 유적지와 피난민들의 증언을 토대로 제3국으로 간 반공포로를 주연으로 동족상잔의 비참한 역사를 재조명하기 위해 촬영하고 있다. 

영화 스토리는 제3국으로 가서 살고 있는 반공포로의 삶과 그 당시의 실상을 되돌아보는 비운의 역사가 토대다. 동족상잔의 전쟁으로 고향과 부모 형제와 이별하고, 그토록 가고 싶어도 가지도 못하는 고향과 부모형제를 만나지도 못하는 애절한 마음을 담는다.

이번 영화촬영에는 북한에서 15살 어린 나이에 포로가 된 김명복씨(80)와 강동희 목사(88), 91세의 도성 스님이 출연한다.

제2고향인 거제를 찾은 이들을 위해 권민호 거제시장과 반대식 시의회 의장이 거제시청에서 환영식을 갖고 당시의 회고담을 들었다. 좋은 기록영화 촬영을 위해 반 의장이 처음부터 끝까지 자료제공과 현지 안내를 했다.

6.25 전쟁이 일어 날 때 북한에서는 13살부터 40세까지 군인으로 나가 싸우게 했다. 당시 평안북도 용천에서 15살의 나이로 괴뢰군에 징집돼 싸움터에 나왔다가 경기도 양평에서 포로가 된 김명복씨는 거제도 76수용소에서 생활 하다가 83수용소로 옮긴 이후 반공포로로 석방됐다.

김명복씨는 61년 만에 포로수용소가 있었던 수양마을 앞 현장에 와 당시의 포로생활을 회상하며 추억을 하나하나 되살렸다.

함께 동행한 강희동씨는 함경북도 유흥이 고향으로 평양에서 포로가 돼 부산 거제리 수용소에 있다가 거제도에 잠깐 머물렀다. 이번 방문에는 외국인 부인과 동행했다. 그는 브라질에서 장로교회 목사로 활동하다 얼마 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목회 활동을 하고 있다.

도성 스님은 함흥이 고향이다. 전쟁 당시 포로가 돼 거제도 6단위 수용소에서 7단위, 8단위, 9단위까지 여러 곳을 옮겨 다니며 반공과 친공포로들 간 사상적 이념으로 많은 사람이 죽어가는 것을 목격한 그는 반공포로로 석방된 뒤 스님이 돼 해인사 주지를 거쳐서 태종사에서 정진 중이다.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수용됐던 포로들 간 사상전은 1952년 5월7일 거제도 포로수용소장 돗드 준장의 납치사건이 그 대표적인 경우였다.

1953년 6월18일 이승만 대통령이 반공포로로 분류해 육지의 7개 수용소에 이송 수용 중인 인민군 포로 3만5698명을 단독으로 석방했는데 그중 2만7389명이 자유대한의 시민이 되고, 나머지는 미군에 체포되거나 탈출해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또

 북한으로 가지 못하고 한국에 남을 수 없는 포로는 제3국으로 갔다. 제3국으로 간 반공포로는 1993년 MBC 초청으로 33명이 거제를 다녀갔고, 1996년 76명이 방문했다.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는 17만3000명의 포로가 생명을 구제받았다. 포로들 가운데는 북한 공산포로와 일반인, 그리고 남한출신의 의용군과 민간인 등이 있었다.

공산군이나 중공군이 아닌데도 포로가 된 것은 그 당시 공산군들이 낮에는 민간복을 입고 있다가 밤이 되면 야간 공격을 했기 때문에 괴뢰군과 민간인이 분간되지 않았고 신분 확인도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운의 전쟁유물이 남아 있는 거제도 포로수용소는 멀지 않아 세계문화유산의 관광 자원이 될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