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은 순간의 소중함을 일깨운다
추억은 순간의 소중함을 일깨운다
  • 거제신문
  • 승인 2015.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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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끝 여자친구 - 김연수 作

▲ 박형진(29·옥포동)
김연수 작가의 '세계의 끝, 여자친구'의 단편소설집 중에서 첫 번째 장인 '케이케이의 이름을 불러봤어'를 선택해서 읽어왔고, 거기에 대한 내 생각과 느낌을 정리하고 싶었다.

소설은 주인공이 사랑한 17년 연하의 케이케이를 아름답게 상상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소설 중후반부의 전개에서 주인공이 케이케이를 잃고 난 후의 고통, 회색·검은색의 세상을 대면하는 과정이 나온다. 그래서 소설이 전개될수록 첫 장면이 너무 아름다웠다는 것을 상기시켰고, 그것이 주인공의 아픔을 더욱 강하게 전달했다.

소설 전체를 지배하는 이미지는 검은색이었다. 사랑하는 케이케이는 우주의 90%를 차지하는 암흑물질로 사라졌다. 케이케이를 사랑했던 세포들이, 당시의 내 얼굴이 달리 갈 곳이 없기 때문에 그 속으로 사라져 간다고 주인공은 믿는다.

다만 당신은 그것을 보지 못할 뿐이라고. 케이케이의 젖은 몸은 보통의 육체와 달리 한없이 부드럽고 연약해서 물에 풀리는 물감처럼, 공기 중으로 퍼져나갈 것만 같았다.

사랑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어느 밤, 케이케이는 어둠 속에서 도시가 불에 타는 장면을 보고 며칠 지나지 않아 죽었다. 주인공은 그 불들의 영향으로 케이케이가 죽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은 고속도로를 지나다 트럭에 붙은 불을 보며, 불이 만들어내는 검은 연기가 무한한 공간으로 사라지는 것을 본다. 그리고 그 불은 우리 내부 깊은 곳에서 타올라서 살아있는 동안 눈으로 볼 수 없으며, 죽을 때까지 타오를 것이라고 확신한다.

책을 읽고 내린 결론은 지금 내가 숨 쉬는 이 삶이, 순간이 가치로 매길 수 없을 만큼 소중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살아 숨 쉬는 모든 것, 현재 나와 같은 시간을 살아가는 것이 마찬가지로 소중하게 여겨진다.

우주의 흐름 속에서 어느 종이 더 우월하고 열등하다 매기는 것이 무의미해진다. 때로는 서로 대치하기도 하고, 때로는 조화를 이루며 치열하게 살아내는 모든 존재는 그 자체로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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