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약해(高若海)
고약해(高若海)
  • 거제신문
  • 승인 2015.09.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어느 회사에서 직원을 감원시켜야 할 일이 생겼다. 사장은 회사 분위기를 흐리고 업무에 도움이 되지 않는 세 사람을 골라 해고시켰다. 하는 일마다 불평만 늘어놓는 '불평쟁이'와 늘 걱정을 안고 사는 '소심쟁이'와 차분하게 앉아서 업무를 보기보다는 밖으로 돌아다니기를 좋아하는 '뺀질이'이었다.

그런데 이 세 사람을 다른 회사에서 직원으로 고용해 갔다. 그리고 불평쟁이에게는 품질관리본부장 자리를 주었더니 아주 작은 문제점도 그냥 넘기지 않는 성격 탓에 불량품이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소심쟁이에게는 안전관리 책임을 맡겼다.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는 그의 세심한 성격 탓으로 안전한 회사가 되었다. 뺀질이에게는 앉아서 일하는 업무보다는 주로 밖에서 일하는 영업과 홍보 업무를 맡겼더니 회사의 매출이 쑥쑥 올라갔다. 리더란 조직원을 적재적소에 쓸 줄 아는 사람이다.

조선 세종임금 때 고약해(高若海 1377-1443)라는 신하가 있었다. 성질이 어찌나 못됐든지 우리가 가끔 듣는 말 중에 "참 고약한 사람이야!"하는 말의 어원이 된 위인이다. 실록에 의하면 잘못된 것을 아뢰는 일을 자기의 임무로 삼아 임금이 하는 일에 사사건건 태클을 걸었다. 이에 세종임금도 몇 번 파직을 시킬 만큼 골치를 썩였다. 오죽했으면 세종임금이 말을 잘 듣지 않는 사람을 가리켜 "고약해 같은 놈"이라고 했을까

그러나 역시 세종은 큰 그릇의 리더였다. 고약해에게 가장 알맞은 대사헌의 자리를 내 주었다. 대사헌은 지금으로 치면 검찰총장쯤 되는 자리로 관료들의 잘못과 풍속을 바로잡는 감찰기관의 대장이다. 옳지 못하다고 생각하면 임금 앞에서도 눈알을 부라리고 뜻이 맞지 않는다고 힁허케 자리를 박차고 나갈 만큼 거침이 없는 그가 만일 세종 같은 임금을 만나지 못했다면 천덕꾸러기로 변방에만 돌다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을 것이다.

그가 개성부유수로 나갔다가 몇 달 못 지내고 1443년 67세로 세상을 떠나자 임금은 하루 동안 조회를 정지하고 조의를 표했을 만큼 그에 대한 세종의 애증은 유별났다고 볼 수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