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집안의 안녕과 평화를 기원하는 '안택고사'는 오랜 전래풍습이지만 이제는 정월 지신밟기에서나 볼 수 있을 뿐이다. 대신에 집을 지을 때 올리는 상량고사, 바다에 출어하기 전에 용왕신께 드리는 뱃고사, 공장이나 회사를 기공하거나 준공식 때 드리는 사업장고사, 개업하면서 장사 잘 되기를 기원하는 개업고사가 있다.
이런 고사들에 비해 새 차를 사면 안전을 기원하며 드리는 고사는 흔히 보는 풍경이다. 좀 크게 할양이면 지그시 미소를 짓는 돼지머리를 중심으로 팥 시루떡·마른 포·곶감·밤·대추 등으로 상을 차리고 무당을 불러 무악을 울린다. 그러나 대개는 북어 한 마리에 막걸리로 단출하게 드리는 경우도 많다. 고사가 끝나면 주변 사람들과 준비한 음식을 나누며 덕담을 주고받게 된다.
전통적 우리 풍습에서의 고사는 일정한 구색이 있었다. 고사를 지내기 며칠 전부터는 궂은일을 금하고 몸을 깨끗하게 했다. 고사떡은 팥고물을 켜켜이 놓아 찐 시루떡인데, 민가에서는 여섯층으로 쪘고 부잣집에서는 여섯 시루의 떡을 쪄냈다. 이는 조상신·터주신·성주신·조왕신·삼신신·잡신 등 여섯 신을 공양하기 위함이지만 기실은 마을 사람들과 나누어 먹으려면 떡이 넉넉해야 했기 때문이다.
고사상에는 쌀 한 그릇·정화수·나물·과일·북어 그리고 숟가락과 명주실을 올려놓는다. 숟가락에 실을 늘어뜨리는 것은 자손들이 풍족하고 오래 살라는 의미이다.
얼마 전에 1톤 화물차를 새로 산 기념으로 주변 사람들을 모아 놓고 기원고사를 지낸 후 차 주인이 시운전을 하려다 조작 실수로 차량이 돌진 해 차 앞에서 술을 마시던 친구를 덮쳐 죽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 나지 말라고 드리던 고사가 오히려 화근이 되고 말았으니 참 딱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