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첫 번째가 '혼담(婚談)'이다. 혼담은 반드시 중매여야 한다. 비록 양가에서 약속된 혼인이라 하더라도 형식적 중매는 필요했다. 혼담이 이루어지면 신랑될 사람의 생년월일시를 적은 '사주단자(四柱單子)'와 청혼을 허락해 달라는 서신을 보낸다. 신부집에서는 받은 사주로 궁합을 보고 나서 붉은 보자기에 혼인 날짜를 적은 '택일단자(擇日單子)'를 보낸다.
그걸 받은 신랑집에서는 혼서지(婚書紙)와 예단을 보낸다. 이 혼서지는 신부가 평생 보관했다가 죽으면 관에 넣어 준다. 이승에서 부부였음을 인정하는 증명서가 된다고 믿었다. 혼인날 신랑은 말을 타고 일행과 함께 신부집으로 간다. 이를 초행(初行)이라 하고 신랑집을 대표해서 가는 어른이 상객(上客)이고, 그 외에도 함진아비, 중방, 후객 등이 따랐다.
신랑 일행이 마을에 도착하면 신부집에서는 대반(對盤)이라는 직책의 안내원이 나와 정중하게 맞이하고, 잠시 여장을 풀 곳으로 안내하고 신부집에서 술과 음식을 보내 요기를 하게 한다. 여기서 신랑은 사모관대를 차려 입고 시간에 맞추어 혼례청으로 나간다.
함진아비가 먼저 '납폐(納幣)'함을 지고 들어가면 신부집에서는 친척이나 이웃 중 가장 다복한 사람이 함을 깔고 앉으면서 "복 들어 왔네"하고 소리친다. 납폐가 끝나야 혼인식이 시작된다. '예식(禮式)' 후에는 신랑은 신부집에서 준비한 옷으로 갈아입는다. 상객은 별도로 큰상을 받고 여기서 남은 음식은 모두 신랑집으로 싸서 보낸다.
혼례를 치르고 나서 시가로 가는 것을 '우귀(于歸)'라 하는데 이는 지방에 따라 당일우귀 삼일우귀가 있고, 풍습에 따라서는 신랑만 먼저 본가로 갔다가 재행(再行)하여 신부를 데려 가기도 하고, 근친(覲親)이라고 해서 같이 신랑집에 갔다가 3일 후 신부집에 가게 되는데 이를 '첫걸음'이라 표현했다.
요즘 한창인 결혼철에 우리 전통혼례를 한번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