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자유주의의 고도화로 인해 학생은 입시경기장의 경주마가 됐고 청년은 포기하는 것이 늘어만 가고 노인은 질병·빈곤·고독·역할상실 등 사중고에 허덕이고 있다.
이런 사회 현실을 반영해 물질보다는 사람을 다시 되돌아보는 인문학이 최근 학교 밖에서 각광을 받고 있지만 거제에서는 접할 기회가 별로 없는 것이 사실이다.
지난해부터 거제에도 인문학 담론이 싹트고 있다. 인문학 모임인 이문회우(以文會友)는 작년 3월에 만들어진 거제도서관 소속 동아리다.
'이문회우, 이우보인'이란 논어 구절에서 따온 모임 이름은 '고전을 통해 벗을 만나고 벗을 통해 인을 북돋운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모임은 고전을 통해서 개인과 이웃의 삶, 사회전체를 되돌아보고 건강한 개인, 인(仁)이 넘치는 사회, 보편적 가치를 지향한다. 앞으로 약자를 위한 인문학, 청소년을 위한 인문학, 조선해양산업과 인문학, 마을공동체와 인문학 등을 이야기 할 예정이다.
이 모임은 부산대학교 권서용 철학박사의 가르침을 토대로 18명으로 출발해 현재 21명으로 구성돼 있다. 30대에서 70대에 이르기까지 연령층도 다양하다. 이문회우는 거제의 척박한 인문적 토양에도 불구하고 동·서양철학, 불교철학 전반에서 인문학적 소양의 싹을 틔우며 배움의 열의를 이어나가고 있다.
모임은 매주 수요일 거제도서관에서 열리고 있고 수업은 강독(講讀) 형식으로 함께 책을 읽고 권서용 교수의 해석과 각자 의견을 나눈다.
작년 수업이 이뤄진 책은 총 7권으로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동물농장, 팝송에서 만나는 도덕경, 논어 등이다. 올해는 불교인식론과 논리학을 읽었고 현재 장자내편을 강독하고 있다.
지난 8일 이뤄진 모임에서는 장자의 '무용지용, 유용지용(無用之用, 有用之用)'에 대해 읽고 각자 생각을 나눴다. 무용지용이란 쓸모없음도 쓸모 있다는 역설적인 뜻으로 구불구불한 상수리나무가 재목으로 아무 쓸모가 없어 천수를 누린다는 사례로부터 나온 말이다. 반대로 유용지용은 현실을 대변하는 말로 쓸모 있는 것이 곧 이롭다는 뜻이다.
권 교수는 "시야를 넓혀 본질을 고민해 본다면 모두의 가치가 존중받을 수 있다"며 "상수리나무의 예를 통해 사회의 요구에 우리 몸과 마음을 맞출 필요는 없다. 특히 공부한다고 생각할 겨를이 없는 아이들에게 여유를 주고 스스로 하고 싶은 것을 찾게 돕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다"고 설명했다.
이문회우 정귀숙 대표는 "고전이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보편적인 인간의 삶의 문제를 다루는 텍스트로서 현재에도 그 가치가 충분히 높다"며 "인문학을 공부하면서 아이들 가르침에 변화가 생겼고 개인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많이 넓어졌다"고 말했다.
회원 배영미씨(47·수월동)는 "보통 사람들이 인문학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며 "막상 접해보면 인문학은 삶에 대한 이야기로서 전혀 어렵지 않다. 개인 성장과 자녀 교육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소감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