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벨로(RAVELLO)
라벨로(RAVELLO)
  • 거제신문
  • 승인 2015.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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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민 칼럼위원

▲ 이용민 경남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이탈리아는 유럽에 살고 있는 사람들도조차 가장 여행해 보고픈 곳이 많은 도시를 보유한 나라이다. 역사적인 우월함이 곳곳에 버티고 있고 고금을 질러 예술가들의 숨결이 눈 가는 곳 마다  머물러 있다. 사람들은 게을러 보이고 정직하지 않다고 소문이 나 있다. 심지어 청결하지도 않아 절대 선진국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바티칸에는 세계에서 몰려온 수많은 기원들이 줄을 서 있고 남부 해안도시들엔 죽기 전에 꼭 가보라는 도시들이 즐비하다.

축구 때문에 간혹 사람이 죽기도 하지만 축구 얘기로 말을 잘 섞으면 공짜술도 얻어먹을 수 있는 나라다. 

성악의 나라답게 베니스에 가면 곤돌라의 뱃사공도 성악가 뺨치게 한 자락 뽑아내고, 유명한 빵집에 줄이 길면 멋들어진 노래 하나로 맨 앞자리로 직행도 한다는 나라 그래서 파바로티나 보첼리 같은 세계적인 성악가들을 꾸준히 배출하고 또 노래꾼들을 가르치는 훌륭한 학교와 콩쿠르도 많아 세계의 성악도들이 모이는 곳이 이탈리아다.

우리에겐 중·고등학교 음악교과서에 많이 나오는 '나폴리'나 '소렌토'가 이제 교과서가 아닌 필수여행지로 리스트에 올라 있고 '푸니푸니 푸니쿨라'를 흥얼거리며 케이블카도 한번 타봐야 될 듯한 나라, 이탈리아가 떠올리게 하는 그림들이다.

인터넷을 잠깐 검색해 봐도 이탈리아에서의 추억과 관련된 자료들은 셀 수 없이 많다. 우리나라에 진출해 있는 서양음식 가운데 가장 대중적이다 못해 외식업의 지형을 바꿔 놓고 있는 '피자의 나라' 이탈리아, 그 이탈리아의 남단엔 '라벨로'라는 거제와 사뭇 닮은 마을이 있다.

나폴리를 벗어나 소렌토를 지나면 '아말피'라는 해안선이 펼쳐진다. 마치 구조라, 와현, 학동, 명사로 이어지는 형세와 비슷하다. 어떤 곳은 '여차'의 남성미 버전 같기도 하다. 해안을 따라가는 도로는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에겐 견디기 힘들만큼 아찔할 뿐만 아니라 도로의 폭이 너무 좁다. 절경을 감상하기 위해 배려나 안전은 뒷 순위로 제껴 놓았다고 해도 믿을 수밖에 없을 정도다.

해안을 따라 형성된 크고 작은 마을들은 매력적인 특산물로 관광객의 주머니를 털기도 하는데, 세계적인 맛을 자랑하는 레몬은 가공법이 다양해 차로 만들어 마시거나 잼을 만들어 빵에 곁들여 먹기도 하지만 '레몬체리'라는 술을 만들어 기가 막힌 토속주로 빚어내었다. 지중해를 바라보며 베어 물 듯 마시는, 세상에서 가장 싱그러운 술 '레몬체리'. 뿐만 아니라 원색과 빛으로 구워낸 유쾌하기 짝이 없는 도자기. 집집마다 도자기로 구워낸 집 주소들이 질서라곤 눈 씻고 봐도 찾을 수 없고 그저 본인의 집에 가장 잘 어울리는 방식으로 부착되어 집배원이 아니라도 주소 보는 재미가 쏠쏠한 골목길 갤러리. 바다 옆에 이렇게 위험한 각도로 서 있어도 되나 싶을 만큼 아찔아찔 조형미를 뽐내는 가옥들과 지중해성 식물들은 여기가 지상낙원임을 증명하듯 유유하다.  

이런 절경의 '아말피' 중에서도 으뜸인 곳이 도로 위 산악지대인 '라벨로'이다.

'라벨로'는 유럽인들에게는 신혼여행지로 유명하다. 하지만 실제 가서 보면 젊은이들 보다 인생의 연륜이 쌓인 50대 이후의 관광객들이 더 많다. 우리나라나 아시아권엔 아직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아서인지 단체여행객들의 모습들도 쉽게 보이진 않는다. 아니 그런 패키지 여행과는 애초에 맞지 않는 곳인지도 모르겠다.

집집마다 건축물이나 조경이 바다와 산과 하늘에 어울려 현실감을 잊게 하는데 1882년 바그너는 이곳에서 그의 마지막 음악극 '파르지팔'을 완성했다고 한다.

금관악기로 단순하게, 그러면서도 또박또박 에스켈레이션하다 절정에 다다르는 서곡의 주제는 내가 어릴 때 어떤 방송국의 뉴스 시그널로 사용되었었다. 그래서 너무 익숙한 선율이고 실제 연주를 들어봐도 이 주제는 미묘한 변화가 있긴 하지만 마치 '라벨로'의 골목길이 끝나면 또 다른 골목길이 이어지며 나타나듯 원시적인 반복을 하고 있다.   

바그너가 베니스에서 죽기 직전까지 5년 가까운 세월을 '파르지팔'에 바쳤던 라벨로에는 바그너의 흔적이 많다. 마을 중앙에 있는 두오모성당의 왼쪽을 오르는 계단은 그래서 '바그너계단'이라 하는데 파르지팔의 연주시간이 4시간을 넘어서는데 비하면 계단의 길이가 너무 짧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바그너의 유지를 따라 사후 한동안 바이로이트축제극장에서만 공연되었던 '파르지팔'이 우리나라에 초연된 것도 2013년 예술의 전당에서였으니 이 익숙한 듯 생소한 천재의 진면목은 두고두고 궁금할 것 같다.

음악제가 열릴 내년 여름'라벨로'로 벌써 마음이 달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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