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일광 논설위원

2002년 미국 플로리다 주에서 성폭력 용의자로 경찰의 추적을 받던 하비 테일러라는 사람이 오히려 경찰을 고소하는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이유는 자기를 빨리 체포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경찰에 쫓겨 도망 다니다가 눈밭에 갇혀 사흘 낮밤을 보내는 바람에 동상에 걸려 발가락 두 개를 잘라내야 했다. 테일러는 "경찰이 일만 제대로 했어도 내 발가락을 붙어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경찰이 내 발가락 잘린데 대하여 책임을 지라"는 것이었다.
의료사고가 났을 때 의사는 '모든 노력을 다했음'을 입증해야만 한다. 그러다보니 의사는 웬만하면 그냥 넘어갈 것도 지나칠 정도로 각종 검사를 한다. 의료진의 진료적 방어 때문에 환자는 엄청난 추가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각종 제품마다 깨알만한 글씨로 경고문구가 빼곡하게 적혀 있는 것도 소송을 피하기 위해서고, 놀이터에서 그 흔했던 정글짐이 사라진 것도 아이들이 다치자 소송하는 부모들 때문이다. 예전 같으면 잘못해도 한 번 웃고 악수하고 소주 한 잔으로 풀어질 일도 이제는 다투기도 싫고 아예 소송으로 가버리는 세상이다. 미국에 살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식사하셨어요"하는 말만큼이나 가장 많이 듣게 되는 말이 "I will sue you!(당신을 고소하겠어!)"라는데 이미 우리도 그런 세상에 살고 있는지 모른다.
무슨 일만 벌어졌다하면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들이 자랑스러운 모습으로 고소장을 접수시키는 장면이 텔레비전을 타고 전국적으로 방송되면서 온 나라를 자꾸 소송만능주의로 이끌어가고 있다.
저작권자 © 거제방송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