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에 살리라
청산에 살리라
  • 거제신문
  • 승인 2015.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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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민 칼럼위원

▲ 이용민 경남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김영삼 전 대통령의 국가장이 치뤄졌다. 광주 출장길에 갑자기 쏟아지는 눈을 맞으며 잠시 숨을 고르려 들른 휴게소에서 텔레비전을 통해 그의 장례식을 볼 수 있었다. 장례식장엔 눈이 내리고 화면으로 보기에도 몹시 추워 보였다.

평생의 지기인 손명순 여사의 힘겨운 남편 보내기가 안타깝고 처음 모습을 드러낸 장남 은철씨의 끝까지 다 드러내지 못하는 모자와 선글라스에서 마음이 저렸다. 그의 선 굵은 인생의 마지막 길에 하늘도 그냥 가만히 있을 순 없었던지 눈발은 그렇게 서글프게 내리고 있었다.

김영삼대통령은 우리 지역 출신이라 그가 조국의 민주화를 위해 불꽃처럼 일어설 땐 모두의 자랑이었다. 그러나 IMF국가부도 사태의 책임을 지고 여론의 뭇매를 맞을 땐 가족의 일처럼 안타까운 마음으로 숨죽여 볼 수밖에 없었던 세월이 있었다.

타고난 강직함으로 돌직구의 원조가 돼 주변을 깜짝깜짝 놀라게 만드는 어법은 잊혀질만하면 언론을 통해 희화화되기까지 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더 마음을 졸이며 "참 저 양반, 이제 좀 고마하시지…" 하고 숨어드는 마음을 불편해 했다.

그런데 그런 그의 죽음 앞에 정치권은 물론이고 국민들이 전체적으로 호의적인 평가를 내어 놓고 있다. 물론 이것 역시 식구된 기분으로 조심스레 지켜 볼 수밖에 별 다른 도리가 없지만, 그나마 각종 매체에서 쏟아 내는 '그의 역사'를 화제에 올리고 젊은 세대에게 무용담처럼 전해 주고 있는 걸 보면 김영삼 전 대통령의 죽음은 최근에 있었던 어떤 이의 죽음보다 의미 있어 보인다.  

그의 장례식에서 울려 퍼진 노래 한 곡에 마음이 갔다. 2010년 김 전 대통령의 83세 생일에 본인의 요청에 의해 축가로 불리어졌다는 노래, 우리 가곡 '청산에 살리라'가 유족의 요청으로 연주된 것이다.

'청산에 살리라'는 한양대학교의 설립자이자 총장을 지낸 작곡가 백남 김연준에 의해 지어진 노래이다. 김연준은 대한일보 사장으로 언론인이기도 했는데 1973년 '대한일보 수재의연금 횡령 사건'과 관련해 구속된 뒤 옥중에서 이 곡을 지었다는 것이 공식적인 스토리다.

검찰은 김연준이 자신이 운영하던 신문사의 수재의연금을 횡령·착복했다고 주장했지만 대한일보 쪽은 수재의연금이 일정 금액에 이를 때까지 은행에 예치하며 신문사가 관리하는 건 관례라고 맞섰다.

결국 이듬해 대법원은 김연준에게 무죄 판결을 내렸지만 대한일보는 이미 등록을 자진 철회하는 형식으로 폐간된 뒤였다.

하지만 '대한일보 폐간'의 배경엔 이른바 '윤필용 사건'이 있다는 게 중론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총애를 받으며 이후락 중앙정보부장, 박종규 청와대 경호실장 등과 권력경쟁을 했던 윤필용 당시 수도경비사령관이 '박정희 후계 준비' 운운하는 발언으로 된서리를 맞았던 사건인데 김연준이 윤필용과 가깝게 지냈던 탓에 화를 입었다는 것이다.

아무튼 안빈낙도와 호연지기가 느껴지는 이 노래에서 김영삼 대통령은 마음의 위안을 얻었는지 모르겠다. 예전엔 참 많이 들었던 우리 가곡인데 요즘은 기악의 시대라 접할 기회가 많지 않은 우리 노래, 그의 장례식을 통해 마음을 열어 주는 우리 가곡들이 많이 불려졌으면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 봤다.

남성미가 사라져 가고 있는 시대, 언젠가 그의 호방하고 거칠 것 없는 리더십이 정말 그리워질 것이라 생각하며 '시대의 영웅'에게 안녕을 고하며 명복을 빈다.
 
청산에 살리라
1.
나는 수풀 우거진 청산에 살으리라
나의 마음 푸르러 청산에 살으리라
이 봄도 산 허리엔 초록빛 물 들었네
세상 번뇌 시름 잊고 청산에서 살리라
길고 긴 세월 동안 온갖 세상 변하였어도
청산은 의구하니 청산에 살으리라
2.
나는 수풀 우거진 청산에 살으리라
나의 마음 푸르러 청산에 살으리라
이 봄도 산 허리엔 초록빛 물 들었네
세상 번뇌 시름 잊고 청산에서 살리라
길고 긴 세월 동안 온갖 세상 변하였어도
청산은 의구하니 청산에 살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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