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나 "아프더라도 같이 살자, 떠나지 마라"고 속삭이는 남편을 두고 갈 수 없었다. 그러다 어느 날 아내는 꿈을 꿨다. 아름다운 소녀가 다가와 같이 가자고 해서 뒤를 따라 갔더니, 깨끗한 물이 흐르고 수많은 꽃이 피어 있는 곳에 도착했다고 한다. 그곳은 상상할 수 없는 만큼 아름다운 곳이어서 남편에게 "간다"는 말을 하고 와야겠다는 생각에 꿈에서 깨어났다. 아내는 남편에게 꿈 이야기를 했다.
"여보, 그곳은 너무 아름다웠어. 몸이 하나도 안 아팠어. 나중에 당신도 와. 우리 그때 다시 만나자." 가만히 듣고 있던 남편이 말했다. "그렇게 좋으면 가야지." 남편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아내에게 떠나도 좋다고 허락을 했다. 부인은 남편 품에서 잠자듯 떠났다. 얼마 전 한 일간지에서 읽었던 기사 속의 이야기다.
함께 부둥켜 살았던 한 세상에서 먼저 몸 떠나는 사람과 남겨져야 하는 사람의 힘들고 아픈 무게는 어떻게 저울질 할까? 이별의 슬픔이 무게로 계량 될 성질은 못되지만, 남겨진 사람들 사이에서는 조금 더 아프거나 덜 아픈 이별이 존재한다.
'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면 붙이면 '남'이 된다는 유행가 가사가 있듯이 임과의 이별과 남과의 그것은 분명 차이가 있다. 하지만 슬퍼한다는 공통 명제만큼은 확실하다.
위에서 이야기한 부부의 이별도 남의 이야기이지만, 누구나 똑같이 가슴 뭉클한 아픔을 느꼈을 것이다. 누군가 잃어버린 것들은 나 역시도 잃어버릴 수 있다는 불안감과 부부의 애절한 사랑이 슬프고, 안타까운 연정이 함께 했을 것이다.
대부분 갑자기 찾아오는 이별에 대해 너무 아는 것도 없고 미리 준비한 것도 없어 막막해 한다고 한다. 누구나 이별 앞에서는 서툴기 마련이고 막상 닥치면 당황하고 아프기부터 하는 것이겠다.
어린시절,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하루 종일 친구들과 놀며 담담했던 내가 어머니 앞에서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난다. 종일 아슬하게 지켜 온 긴장을 녹여버린 어머니는 아들의 이별이 안타까워 어린 자식의 머리를 밤새 쓰다듬어 주셨다.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했던 김영삼 전 대통령이 떠났다. 대부분의 국민들이 애도하며 생전 공과에 대해 이야기 했다. 그런데 전직 대통령의 죽음 앞에 모두 같은 예의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짧은 기간 동안 전직 대통령을 세 분이나 보내야 했지만, 죽음 앞에서도 서로의 입장이 극명하게 나눠져 그 이별을 정리할 궁리가 참으로 어려웠었다.
어디 그 뿐인가. 세월호의 푸른 죽음은 아직도 정리되지 못했고 서로가 만들어 놓은 이별에 대한 다른 방식은 우리 사회를 위협하기 시작했다. 연평도의 이별이 그랬고, 해고 노동자의 억울한 죽음이 그랬다. 정리되지 않는 이별이 많아질수록 우리 사회는 수많은 감옥을 새롭게 만들면서 스스로 수형자처럼 살고 있다.
그러고는 이 땅이 '님'이 아닌 '남'에 의해 잘못돼 가고 있다고 절규한다. 너무나도 평범한 백성인 내가 보더라도 지금 이 사회는 재난 수준이다. 재난보다 더 무서운 삶의 실재가 정리되지 못한 체, 죽음도 거부하며 기다리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의심하고 스스로 분해하면서 산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이 땅의 사람 사는 처지나 이별에 대한 예의는 더없이 의심스러운 것이 되었다. 누구나 한 번은 이별을 주고 떠나지만, 이별 뒤에 남은 사람들이 그것으로 인해 의심하고 서로 다치지 않게 했으면 한다. 모든 '남'이 나의 '님'이 되고, 더 나아가 행복한 이별만 가득한 희한한(?) 세상이 왔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