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의 인연
형제의 인연
  • 거제신문
  • 승인 2015.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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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일광 논설위원

인연(因緣)의 단위가 겁(劫)이다. '1겁'이라고 하면 사방 1유순(由旬·8㎞)인 성(城)안에 겨자씨를 가득 채워놓고 100년에 한 알씩 끄집어내어 다 없어지는 시간을 말한다. 그런데 이승에서 옷깃을 한 번 스치려도 500겁의 인연이 있어야 된다.

부부가 되는 인연은 7천겁이고, 부모와 자식의 인연은 8천겁, 형제자매가 되는 것은 9천겁의 인연이 있어야한다. 형제는 부부나 부모자식간보다 더 어렵게 만난 인연이다. 그래서 부부사이는 돌아서면 남이지만 부모형제간에는 변하지 않는 천륜이라 했다.

2000년도 이전 초등학교 국어교과서에 실려 있던 충남 예산 땅에 '의좋은 형제' 이야기는 감동적이다. 추수가 끝난 다음 형과 아우가 서로를 위하는 마음으로 한밤중에 상대방의 벼 낟가리에 볏단을 가져다 놓는다는 동화 같은 이야기로 그냥 꾸며냈거니 하고 여겼는데 1978년 가뭄 때 예당저수지의 물이 빠지고 난 뒤 우연히 발견한 비석으로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이성만(李成万)과 이순(李順)형제로 실존인물이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형제투금(兄弟投金) 이야기도 참으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형제가 길을 가다가 우연히 금덩어리를 주워 반씩 나누고 나서, 양천나루에서 배를 타고 건너가다가 주운 금덩이로 인해 형제간의 의(義)가 상하게 될까봐 금덩이를 강에 던져버렸다는 이야기 또한 전래동화가 아니라 성주이씨(星州李氏) 가문에 전하는 실화다. 고려 후기 학자로 정당문학에 오른 매운당(梅雲堂) 이조년(李兆年 1269~1343)에게는 백년, 천년, 만년, 억년의 형제가 있었는데 형제투금은 억년과 조년의 이야기이며, 금덩이를 던진 양천나루를 투금탄(投金灘)이라 부른다.

그런가하면 재산 때문에 형제가 남보다도 못할 때가 많다. 판소리계 소설 '흥부전(興夫傳)'의 갈등구조는 형 놀부가 부모의 유산을 혼자 차지하고 동생 흥부를 내쫓는데서 비롯된다.

갈수록 점입가경인 롯데가(家) 형제의 경영권 싸움은 걱정스러운 것이 아니라 텔레비전에 나오는 것조차 짜증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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