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선냄비 곁에서
자선냄비 곁에서
  • 거제신문
  • 승인 2015.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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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광 칼럼위원

▲ 김미광 거제중앙고 교사
얼마 전 어느 백화점 앞을 지나가다보니 자선냄비가 하나 걸려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보고도 못 본 척 그냥 지나가고 나도 그냥 지나갔다. 뒤통수가 약간 당겼다. 그리고 그 냄비가 걸린 백화점 앞이 훤히 보이는 커피숍에서 커피를 마시는데 계속 자선냄비가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그 앞을 무심하게 지나는 무수한 사람들 사이로 엄마 손을 잡은 네 댓 살 정도 돼보이는 꼬마 하나가 냄비 앞에 서는 게 보였다. 아이가 뭐라고 묻고 그 엄마가 뭐라고 아이한테 설명을 하자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두 사람은 돌아서 가던 길을 계속 갔다.

한 오 분이나 됐을까. 아까 그 꼬마와 엄마가 다시 와서 냄비에 동전 두어 개를 넣는 것을 보았다. 찬바람 부는 길에서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냄비가 동전 한 닢에 흔들렸다. 그 아이의 엄마가 자선냄비에 대해 뭐라고 아이에게 설명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아이는 자선냄비의 의의를 이해했음이 분명했다. 백화점에서 물건을 사면 주는 종이가방을 가지고 나오는 사람은 많았으나 자선냄비에 돈을 넣는 사람은 그 작은 꼬마와 엄마 밖에 없었다.

나는 그 꼬마의 엄마에게 박수를 쳐주고 싶었다. 이런 선행을 가르치는 것이야 말로 학교에서는 할 수 없는 산교육이다. 이것이 가정교육이며 부모가 모범을 보이는 것이 아니겠는가.

물론 우리 경제가 어렵고 특히 거제도의 경기가 얼어붙었다하지만 문제는 우리의 마음이 얼어붙은 것이 더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연말이면 나붙는 이웃을 돕자는 구호에 우리는 너무도 익숙해져 있고 나부터도 커피 한 잔을 마실 돈은 있어도 이웃을 도울 마음은 없다는 것이 부끄러웠다.

언젠가 읽은 미국의 존스홉킨스 병원의 창설멤버이자 산부인과의사 하워드 켈리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하워드 켈리는 가난한 고학생이었다. 그는 집안 사정이 좋지 않아 방문 판매를 하며 학비를 벌어야했는데 어느 한 마을에 도착했을 때 그는 지치고 말았다. 그가 가진 것은 주머니속의 동전 한 닢이 전부였다. 너무도 지쳐서 그는 어떤 집의 문을 두드리면서 물 한 잔만 마시게 해달라고 했다. 그의 얼굴을 본 그 집의 소녀가 그에게 우유 한 잔을 건넸고 그가 주머니속의 동전을 주려하자 소녀는 친절을 베풀 때는 돈을 받는 것이 아니라면서 거절했다. 하워드는 너무도 감동해서 그녀의 이름을 수첩에 적어뒀다.

그리고 20여년의 시간이 지나 하워드 켈리가 의사가 된 어느 날, 희귀병에 걸린 한 여인을 치료하게 됐다. 여인은 하워드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치유가 됐으나 1만 달러가 넘는 엄청난 치료비를 감당하기에는 너무도 가난했다. 그러나 그녀가 받은 병원비 청구서에는 '0'라는 글자가 써있었고 청구서 귀퉁이에 이런 말이 적혀있었다. "20년 전에 저에게 대접한 우유 한 잔이 치료비입니다."

모든 선행이 이렇게 보상을 받는다는 말은 아니다. 비록 내가 한 선행이나 구제가 내 눈에는 보이지 않을지라도 누군가에게는 생명을 구하는 것이 될 수 있고 그의 삶을 바꾸는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려울수록 서로 도왔던 우리의 조상들. 그리고 전쟁의 폐허에서 우리가 이 정도 살 수 있도록 도왔던 것도 다른 나라의 선행과 구제가 그 시작이었다. 일주일에 마시는 커피 한 잔 값만 아껴도 충분하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처럼 거창하게 티내지 않아도 된다. 진정한 선행은 땅에서 보상받지 못하면 하늘에서라도 보상을 받기 때문이다.

오늘, 거리의 자선냄비가 빈 통으로 흔들리지 않도록, 우리의 힘과 정성을 모아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자. 오늘 자녀들의 산교육을 위해 자선냄비를 찾아가심이 어떠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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