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사람들이 동쪽나라에는 원숭이가 살지 않는다고 해서 동국무원(東國無猿)이라고 했는데도 12지간에 원숭이가 포함된 것이나, 12세기 전기의 작품으로 국보 제270호인 '청자원형연적'은 새끼원숭이를 안고 있는 어미의 형상을 조형화한 것으로 그 섬세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밖에도 무덤의 호석(護石)이나 부도, 건물난간을 비롯한 조형예술, 또는 도자기, 공예, 회화 등에서도 어렵지 않게 원숭이가 등장한다. 이를 미루어 보아 통일신라 이후 도교(道敎)가 크게 유행하면서 귀족들이 애완동물로 기르거나 그렇지 못하면 연적처럼 조형품으로 만들어 소장하게 되었을 것이다.
특히 원숭이를 나타내는 한자 후(猴)는 높은 지위의 벼슬인 제후(諸侯)의 후(侯)와 발음이 같아 길상의 의미로 더 각별했을 것이다.
우리 고유어에는 '원숭이'가 아니라 '납'이었던 같다. 우리말의 근원이 되는 훈민정음 해례(1446년)에 '납 爲猿(납은 원숭이를 이른다)'이라는 용례가 이를 증명한다. 따라서 원숭이를 '납이→나비'라 불렀다. 그러다가 16세기 송강 정철의 사설시조 '장진주사(將進酒辭)'에 '하믈며 무덤우희 나비 파람불제 뉘우찬들 엇지리(한잔 먹세 그려(…) 이 몸 죽은 후에 무덤 위에서 원숭이 휘파람 불제 뉘우친들 뭐 하겠느냐?)'에서 보듯 ' 납이' 또는 ' 나비'로 음운변화가 나타난다. '잔(잰)'은 '재빠르다'라는 뜻으로 원숭이의 행동을 언어화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빠른 걸음을 '잰걸음'이라한다.
원숭이를 '잔나비'로 부른 것은 '재빠르다'의 '잰'과 원숭이의 '납'이 합쳐져 '잰납' 곧 '날쌘 원숭이'에서 쉬운 발음으로 변화되어 '잔나비'가 되었다고 추정해 볼 수 있다. 원숭이는 확실히 빠르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