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의 소망
새해의 소망
  • 거제신문
  • 승인 2016.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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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석 칼럼위원

▲ 김한석 전 거제문인협회장
샘물은 퐁퐁 솟는다고 한다. 지속적인 자연의 삶을 항상 제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이 샘물이다. 퐁퐁 솟아나는 샘물의 활기찬 모양은 아마 그 샘물이 늘 잃지 않는 마음의 생기 때문일까? 우리들의 삶도 샘물과 같이 늘 의연한 것이다. 마르거나 위축되거나 또한, 함부로 늘지도 않는다. 고집스럽고 억척스럽지만 순징(純澄)한 그 자태는 역시 한결같은 모습이다. 샘물은 공력을 숨겨 저 바닥 밑에서도 온전한 생명의 역할을 다하고 있지 않는가.

해가 바뀌고 세월이 가는 것도 실은 성체운행의 모체가 변하는 것은 아니다. 해마다 그 해에 따라붙는 이름이 다를 뿐 본연의 생명력을 가차없이 드러내고 있다고 본다. 만물이 온기에 의해서 생육의 힘을 받는다면 격물(格物)에 따른 온기 또한 무한하다. 쇳물을 다루는 온도는 치열하고 수목을 가꾸는 기후는 온난하다.

병신년 새해의 온기는 무엇일까? 어떤 온기여야 하나? 병신(丙申)년 천간(天干)의 병화(丙火)의 원리는 매우 크고 온화해 저 태양의 수억만의 시간을 곰삭인 태양열이다. 도저히 감내 못할 용광로의 극열이 천체와 지구를 어루만질 적온이 돼 한 해의 출발을 고하고 있다. 그것은 마냥 하늘에서 생육의 땅을 도우는 지극한 정성이다. 천간 병화를 받드는 지지(地支) 신금(申金)의 강렬한 의지는 결코 때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 땅은 원래 퇴비성분과 그밖에 미네랄이 풍부할수록 생육의 바탕이 된다.

그런데 푸석푸석한 땅심을 거느린 암석이 오히려 지표를 지탱하는 골격이기도 하다. 땅밑 조금만 내려가도 지구의 뼈대는 암석이 분명해진다. 석천(石泉)은 바위 밑에서 솟는 좋은 샘물이다. 이미 되어있는 것은 존재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그 중에서도 원칙과 정성과 그리고 보편타당성을 내재한 시급함이 늘 요청되는 사회라면 이러한 일들은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이런 의미에서 병신년의 천운적 보살핌도 이끌어 힘이 돼야 한다.

번연히 알면서도 어디로 가야하고 어떤 큰 힘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 우리사회는 소아적 편견과 아집으로 자칫 때를 놓치고 있지나 않은지? 우리 모두의 삶이 자연의 천후적 영향과 인위적인 자각의 현실을 서로 불신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특히 정치현실은 국민의 입지를 잘 알면서도 새해의 소망을 많이 흐리게 하고 있다. 벌써 법제화 돼야 할 입법사항임에도 불구하고 노동개혁법안,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북한인권법, 테러방지법 등의 정부 발의안이 국회의원의 당파와 정략적 저항 때문에 국민과 겨레의 추위를 막아내지 못하고 있다.

우선 의안들의 제목만 보더라도 나라가 바르고 빠르게 걸어가야 할 생각이 우리 모두에게 없을 수가 없다. 사안의 중요 시급성을 저버리지 않고 상정된 의안이 대기업 특혜논란에만 휩싸인다면 국민대의에는 미치지 못한다. 국회의결이 비록 완전하지는 못하다고 하더라도 치유기간을 단축시키는데 의미가 있다. 

병신(丙申)년 새해가 문자 그대로 주어진 공덕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성취해야 할 관건은 오로지 우리들에게 있다. 천후와 자연재앙까지도 어쩌면 이것은 인간으로서 대각성의 경지를 도모하기 위해서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평소 실천해야 할 아주 작은 일부터 지구온난화 방지를 위한 온 세계의 이슈에 따른 참여와 관심이 지표매몰의 대재앙을 면할 수 있을 것이다.

하늘에서 내려주는 더없이 큰 태양의 미덕과 공덕을 기리고 가꾸는 뼈대 있는 땅의 긍지와 올 곧은 의지를 관철한다면 총선을 앞둔 우리의 각오는 더욱 놀라운 낙원의 기적을 이룰 것이다. 이를 꾹 다물고 불의(不義)와 무명(無明)을 능가하는 귀한 한 표(票)의 권리와 의무가 금년은 우리의 엄지 손끝에 매달려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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