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해부터 세상이 아프다고 징징거린다. 서로 옳다고 아파서 징징거리는 소리가 나와 내 이웃의 상실감과 불안감을 채우고 있다. 기분 좋고 새롭게 채워 나가야 할 새해에 희망에 대한 역동성은 없고 오직 자신의 편이 옳다고 아우성을 치고 있으니 이명이 들릴 정도다.
일부 정치인이나 교수, 지식인들이 나의 멘토라도 되는 듯 세상일에 너무 많은 소리를 낸다. 지겹다. 살다가 아픔 하나없이 사는 사람이 있겠냐만, 그렇다고 남보다 특별히 더 아파하면서 그들의 소리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을까 싶어 새해부터는 일방적으로 들려오는 소리를 차단하기로 마음먹었다. 관계로부터 단순해져 나부터 행복해져 보자고 다짐한다.
휴대전화에 저장된 연락처를 정리하다가 지난 한 해동안 한 번도 연락하지 않은 사람이 너무 많음에 놀란다. 징징거리는 세상 소리에 귀 기울이다 보니 그들과 행복해질 기회가 사라진 것이다.
급해서 서둘러 인생을 끝낼 것이 아니라면 내가 먼저 행복하기로 하자. 내가 행복하지 않으면 남을 행복하게 할 수 없다는 생각이다. 행복은 인간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가치와 목표임에 틀림없다. 이제 가만히 세상이 내게 들려주는 소리에 귀 기울여 보기로 하자. 그 내면의 소리에 열중하여 자신의 할 일을 찾고 묵묵히 추진해 나가면서 얻어지는 행복은 삶이 주는 단 맛이다.
내가 더 행복해야 하는 이유는 새로운 해를 맞이하는 횟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삶이 다한 뒤에 죽음이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삶이 끝날 때 죽음도 함께 끝난다는 것이다. 삶은 오직 한 번뿐이라는 '일생(一生)'이라는 한자를 보면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영원하지 않음을 알려준다.
게다가 삶(生)은 소(牛)가 외줄(一)을 타는 형상을 가졌으니 인생이 외롭고 아픈 것은 당연한 것이다. 책을 읽던, 글을 쓰던, 취미생활을 하던 자신의 가치를 확인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외롭고 아픈 시간을 줄여 줄 것이다. 격렬하게 더 격렬하게 자신의 행복과 가치를 위해 무엇이든 할 때 내가 행복해지고 세상이 함께 행복해질 것이다.
그러나 무언가를 하고 싶다고 해서, 또 한다고 해서 당장 가능한 일이 아닐 것이다. 나의 행복과 가치를 일깨워 줄 적절한 일을 찾아야 하고 무엇보다 새로운 시간과 빈 공간이 있어야 한다. 사회 관계망에서 나를 빼 자신만의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나의 관계를 포기해야만 그런 시간과 공간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덕담이 오가는 새해는 얼마나 좋은 기회인가. 1년을 펼쳐놓고 봤을 때 얼마나 많은 시간과 빈 공간이 있는가.
새롭게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위로인가! 비어 있어서 기대되고 하지 않은 일이 있어서 다시 기대되는 이른 아침은 의욕으로 가득하다. 무언가 채우려고만 발버둥친 세월, 그 세월에는 울림이 없다. 꽉 채워져 있는 사이에는 소리가 없다. 조금 비워져야 필요한 소리를 낼 수 있다. 속이 비어야 나오는 맑은 악기소리, 잎이 바람에 내 맡겨지는 소리, 속도가 속도에 부딪히는 소리, 시간이 막다른 시간에 가 닿는 소리, 대지가 하늘을 밀어 올리는 소리, 그리고 내가 네게 사랑으로 가 닿는 소리.
모두 조금씩 비어 있어야 가능하다. 가득 찼다는 것은 얼마나 답답한가! 비어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인가. 시작할 것이 많아 두근거리는 새해, 비어있는 마음으로 서로를 만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