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비를 사다
냄비를 사다
  • 거제신문
  • 승인 2016.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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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광 칼럼위원

▲ 김미광 거제중앙고 교사
냄비, 새 냄비를 산지 10여 년이 지났다. 그나마 우리 집에 있는 냄비 세 개중 하나는, 누가 죽을 쒀 주면서 냄비는 안 돌려줘도 된다는 말에 그대로 15년째 사용하는 것이고, 하나는 엄마네 갔다가 찬장에 층층이 쌓여 있는 엄마 냄비 중에서 한 개 슬쩍해 온 것이다. 친구들이 나의 부엌에서 서서 '제발 좀 냄비 좀 사라'는 말을 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내가 불편하지 않으니 괜찮았다.

그런데 요 근래 연말을 맞이하여 큰 냄비가 필요한 일이 몇 번 있었다. 도무지 냄비로 쓸 만한 것이 없어서 할 수 없이 들통을 냄비 대신 쓰기로 했는데 영 마음이 언짢았다. 이거 내가 뭐 냄비도 하나 못 사서 들통을 쓰냐 싶어서 냄비를 사기로 결심. 친구들한테 물어보니 추천해주는 냄비는 전부 독일제나 프랑스제 냄비였다.

주부들 사이에서 이름만 대면 다들 알만한 이름의 냄비들이다. 얼마나 색감이 좋고 튼튼해 보이는지. 특히 고운 색채에 약한 나는 프랑스제 냄비에 마음을 홀딱 빼앗겼다. 냄비가 나의 고상한 취향을 더욱 더 돋보이게 하리라.

그런데 냄비 하나의 가격이 엄청나다는 것을 발견했다. 좋은 것은 세트로 150만원이 넘었고, 냄비 한 개 30만원이 넘는 것이 대다수였다. 불행히도 내가 원하는 외국산 냄비는 도저히 그 돈 주고 사기가 싫을 정도로 비쌌다. 그래서 며칠을 사야하나 말아야 하나로 머리에 쥐가 날 지경.

1980년 대 우리나라 주부들이 너도 나도 일본으로 가서 코끼리밥통을 사오는 바람에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은 적이 있었다. 그들의 일본 쇼핑목록에는 공통적으로 코끼리밥통이 있었고 입국 심사대에 쌓여있는 코끼리밥통을 일본의 한 일간지가 대대적으로 보도하는 바람에 우리는 밥통 하나 제대로 못 만드는 밥통국가로 일본인들의 비웃음 샀다.

내 돈 주고 내가 물건 사는데 누가 뭐라 하느냐 하면 할 말은 없지만, 세계적인 IT강국인 우리나라가 이제는 밥통이 아니라 냄비에 밀린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많은 주부들이 앞 다투어 외국산 냄비를 쓴다. 친구들한테 물어보니 대부분 프랑스제나 독일제 냄비를 쓰고 있단다. 어떻게 우리가 제대로 된 냄비 하나도 못 만들어서 주부들이 외국산 냄비만 찾는다는 말인가.

열 받은 김에 열심히 인터넷을 뒤졌더니 우리도 그런 외국제 냄비 못지않은 냄비가 있었다. 가격은 외국산 10분의 1가격인데 냄비의 재질과 성분은 절대로 외국산에 뒤지지 않는다는 결론이다.

국을 많이 끓이는 우리나라 요리의 특성상 우리 냄비는 바닥뿐 아니라 전체가 통 3중, 혹은 통 5중인 냄비인 반면에, 외국산 냄비는 주로 바닥에 신경을 썼다.

그 색감 고운 외국산 주물 냄비는 안쪽에 주로 에나멜 코팅을 한 것인데, 알겠지만 코팅은 고온에 약하고 언젠가 벗겨진다는 것을 감안하면 건강에 썩 좋은 영향을 미치지는 못한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비싼 외제 주물 냄비를 사용하는 친구의 말을 들어도 코팅이 그리 오래 가지는 못한단다.

그래서 꼬박 3일을 냄비 하나에 매달려 냄비를 고르다가 결국은 우리나라 냄비를 한번 믿어보기로 하고 우리의 통 5중 냄비를 저렴한 가격에 주문했다.

어제 바로 그 냄비가 배달됐다. 물론 내가 바라는 그 색감의 노랗거나 파스텔색깔의 그 냄비는 아니다. 그래서 식탁위에 우아하게 얹어 폼을 잡아 볼 것이라는 나의 로망을 채워주지는 못하지만 냄비의 기본에는 너무도 충실한, 아니 예상한 것보다 훨씬 더 만족스러운 성능을 보여줬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난 철로, 우리 손으로 두들겨 만든 우리 냄비다. 또 환상적인 가격은 어떤가. 외국산 냄비보다 더 좋은 성능에 10분의 1 가격이다. 이만하면 매력적이지 않은가?

오랜만에 제대로 된 쇼핑을 한 것 같다. 오랜만의 애국이랄까. 냄비 하나 가지고 너무 거창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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