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의 스승들
이 시대의 스승들
  • 거제신문
  • 승인 2016.02.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석진국 칼럼위원

▲ 석진국 거제공증사무소 변호사
'종교'는 큰 가르침이고 인생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을 준다. 우리나라는 종교에 있어서 관대하다고 한다. 한 가족 내에 기독교, 카톨릭, 불교 신자가 같이 있으면서도 큰 문제가 없고 각자 취향에 따라 인연에 따라 종교를 선택하고 그 가르침을 따른다.

내가 마산에서 다닌 창신중학교는 기독교 재단 소속이라 일주일에 한 번 성경 과목도 공부했고 조례나 소풍 등 학교 행사에는 목사의 기도와 축원이 빠지지 않았다. 그런 이유로 이 학교에서는 시험을 보고난 후에 기독교 관련 영화의 단체관람이 많았다. 그 당시 본 영화가 벤허·십계·기적·쿼바디스 등. 당시 단체관람은 쉽지 않은 것이어서 다른 중학교 학생들의 부러움을 샀다.

20대 중반이 돼서 부산에서 혼자 사법시험을 공부하고 있을 때 하루 종일 혼자서 공부만 하다보니 젊은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서 가까운 교회에 갔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적당한 교회였고 나는 어느새 그 교회의 모든 모임에 참석하고 있었다.

'결혼하고픈 남자가 좋은 여자를 만나려면 교회에 가라.' 이렇게 권하고 싶다. 보통 청년회에 가보면 여자가 남자보다 두 세배는 된다.

그러다가 나는 이듬해 봄 서울에 있는 대학에 들어가게 됐고 주일에는 당연히 교회에 가야했다. 처음으로 찾아간 곳이 건물이 아주 큼직했고 신도도 엄청나게 많은 교회였다. 부산의 교회는 모든 신도들이 서로 알고 따뜻한 인사를 나누던 것과는 다르게 이 사람들은 내게 전혀 관심이 없었다. '아! 너무 큰 교회는 안 되겠구나!' 그래서 다음 일요일에는 뒤쪽 모진동에 있는 조그마한 교회에 갔더니 신도는 10여명에 목사의 인상도 험악하고 설교내용도 무조건 돈을 바치라는 식이었다. '아! 너무 작아도 문제로구나!' 게다가 당초에 내가 교회에 간 목적 즉 젊은 사람들을 만나기 위함이 대학에 들어옴으로써 다 해결됐으니 굳이 교회에 나갈 필요가 없었다. 그렇게 나와 교회와의 인연은 끝났다.

그 이후 사법시험에 합격해 연수를 받고 변호사 일을 시작하면서 업무에 시달리고 가정사도 순탄치 못했으니 그 해결책을 찾기 위해 틈틈이 종교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도 불교의 가르침에 더 끌리게 됐으니 베트남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자두마을이라는 공동체를 이끌고 있는 틱낫한 스님. 예수가 물 위를 걷는 것이 기적이 아니라 우리가 대지를 걷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이 기적이다. '지금 이 순간에 깨어 있기.' 얼마나 멋진 가르침인가?

또한 우리나라의 숭산 스님, 인도의 마하리쉬. '너는 누구인가? 너의 진정한 실체는 무엇인가?' 특히 우리나라의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은 많은 가르침과 위안을 준다. 이를 가만히 들어보면 소설보다 재미있는 인생사가 다 나오고 스님이 제시하는 해결책은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여러 가지 꽃들이 모여 하나의 화단을 이루듯이 각자의 다양한 개성이 모여 조화와 균형을 이루게 해 시기와 질투를 뛰어 넘어 사랑을, 대립과 경쟁을 뛰어 넘어 화합을, 투쟁과 전쟁을 뛰어 넘어 평화를 이루는 새로운 문명을 창조하고자 한다.

평생을 가사 한 벌과 바루 한 개로 걸식하며 살아가신 부처님의 삶을 본받아 적게 먹고 입고 자며 어디에도 구애받지 않고 살아가는 구도자의 자세를 갖는다. 나아가 중생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여기고 스스로 사바세계와 지옥 속으로 뛰어 들어 중생을 구제하시는 대비 관세음보살님과 대원 지장보살님의 원력을 본받아 일체 중생을 구원하는 대승 보살이 되고자 한다.

한 생각 돌이켜 사로잡힘에서 벗어나 괴로움도 없고 얽매임도 없는 대자유인(成佛)이 되고자 한다. 나아가 인류에게 불어 닥친 이 위기를 극복하고 행복한 인생(맑은 마음), 평화로운 사회(좋은 벗), 아름다운 자연(깨끗한 땅)을 일궈 살기 좋은 세상 정토(淨土)를 만들고자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