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써 사랑을 남기다.
시로써 사랑을 남기다.
  • 이운성 학생명예기자
  • 승인 2007.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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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여류시인 이옥봉, 그녀가 그립다.
▲ 돌길

이옥봉은 본명이 숙원이고 조선의 후예인 옥천군수 이봉의 서녀이다.

당시 사회제도에 의해 서녀의 혼인이란 첩살이가 고작이었으므로 홀로 서울로 올라가 뛰어난 문재로 명사들과 교류하다가 단종의 복위운동에 가담, 유림과 선비들로부터 인정받는 유명인이 되었다 그러다 옥봉은 조원이랑 선비를 사랑하게 되고 이어 그의 첩이된다.

이때 조원은 조건부로 옥봉을 맞이한다. 그 조건이란 평생 시를 짓지 않는다는 것이었다.당시에 아낙이 시를 짓는 것은 지아비의 얼굴을 깍아내리는 것이라는 세태 때문이었을 것이다. 옥봉은 사랑을 쫓아 붓을 꺾고 조원의 첩이 되었다.

첩살이 수년의 세월이 흐른 어느 날 남편 산지기 아내가 찾아와 하소연을 올린다. 사연인즉 남편이 소도둑으로 몰려 파주관아에 잡혀갔는데 파주목사가 조원과 친분이 있으니 도와달라는 것 이었다.옥봉은 산지기아내를 위해 시 한 수를 적어 보냈는데 그 시가 다음과 같다.

세숫대야로 거울삼고
물로 기름 삼아 머리빗었네
이 몸이 직녀 아닌데
낭군이 어찌 견우가 되리오

세숫대야로 거울을 삼고 물로 기름을 삼는다는 것은 청렴한 삶의 자세를 말하는 것이고 "이몸이 직녀 아닌데 낭군이 어찌 견우가 되리오" 라는 말은 견우 즉 소를 끌어간 사람이다.

즉 내가 직녀가 아닌 것처럼 남편이 견우 즉 소를 끌어간 사람이 아니라는 뜻이다.이 시를 본 파주목사는 즉시 산지기를 방면하여 옥봉의 글에 화답했으나 옥봉은 이 때문에 사랑을 잃고 형극의 삶을 살게된다. 남편 조원이 약속을 어겼다 하여 옥봉을 내친 것이다.

쫓겨난 옥봉은 지금의 뚝섬 근처에 방을 얻어 살며 남편의 마음이 돌아서기를 기다렸으나 허사였다. 실연의 아픔을 앓으며 살던 옥봉은 임진왜란을 당하여 죽었다는 것을 알 뿐 그의 생애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어 안타깝다. 다음의 시는 이옥봉이 쓴 ‘몽혼’이라는 시이다.

몽혼-이옥봉

近來安否問如何(근래안부문여하) 요사이 안부를 묻노니 어떠하시나요?
月到紗窓妾恨多(월도사창첩한다) 달 비친 사창(紗窓)에 저의 한이 많습니다.
若使夢魂行有跡(약사몽혼행유적) 꿈 속의 넋에게 자취를 남기게 한다면
門前石路半成沙(문전석로반성사) 문 앞의 돌길이 반쯤은 모래가 되었을 걸.

한문시간에 위의 시 ‘몽혼’을 배우고 난 후 나는 작가 이옥봉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됐다. 위의 시는 이옥봉이 남편 조원에게 소박을 맞고 쫓겨난 후 쓴 시라고 전해진다.

남편을 향한 시인의 간절한 마음을 잘 표현한 작품이다. 나는 이 시가 지니는 형식적인 아름다움을 보기 보다는 시에 나타난 옥봉의 간절한 마음을 읽고 싶다. 시 때문에 사랑이 맺어지고, 시 때문에 사랑을 잃었지만, 시로써 사랑을 남기고 그녀는 떠났다.

남편을 그리는 마음이 얼마나 간절했으면, 집 앞의 돌길이 변해 모래가 되었을까? 현대인들은 너무나도 쉽게 사람을 만나 쉽게 사랑하고, 또 아무렇지도 않게 이별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세태가 이러하기에 나는 이옥봉같은 마음을 지닌 사람들이 그리워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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