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적십자회」 결성
「조선적십자회」 결성
  • 거제신문
  • 승인 2007.10.25
  • 호수 1
  • 1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북한 바로알기

1946년 10월18일 「북조선적십자회」로 결성되었다.

1948년 정권수립과 함께 「조선적십자회」로 개명되었고, 1971년 8월 손성필(당시 당중앙회 후보위원)이 위원장으로 공식석상에 등장하였다.

이후 손성필 위원장이 1990년 2월 주러시아 대사로 부임하면서 이성호 부위원장이 1998년 12월까지 위원장 대리로 직무를 수행해 왔다. 이어 현 장재언 위원장은 1998년 12월26일 평양에서 열린 비정기 대회에서 선출되었다.

조직기구는 위원장 아래 14명의 부위원장, 9명의 상무위원, 1명의 서기장 등을 두고 있으며, 하부조직으로 평양·개성·남포 직할시와 각 도에 위원회를 두고 있다.

「국제적십자위원회(ICRC)」는 1955년 5월26일 「대한적십자사」를, 1956년 2월2일 북한의 「조선적십자회」를 국가적십자사로 각각 인정하였다.

남북 적십자가 인도주의적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첫 접촉을 가진 것은 1971년 8월이다.

▲ 이산가족찾기 당시 모습
1971년 8월 우리측의 「대한적십자사」가 남북 분단으로 인한 이산가족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북측에 「남북적십자회담」 개최를 제의하였고, 이에 북한이 응함으로써 분단 후 처음으로 남북 적십자간의 만남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 회담이 10차(1985년 12월)까지 진행되었는데, 8차 본회담에서의 합의에 따라 1985년 9월에 「남북이산가족 고향방문 및 예술공연단」의 상호 교환이 성사되었다.

그러나 1989년 개최된 2차 「고향방문단」 교환을 위한 실무접촉에서 북측이 「피바다」 「꽃파는 처녀」 등의 혁명가극 공연을 주장함으로써 「고향방문단」 사업은 무산되고 말았다.

한편 1984년에 한국이 큰 수재를 입은데 대해 북측이 식량을 제공함으로써 남북한 첫 물자교류의 길도 열렸다. 그리고 1990년대 들어 북한의 식량난이 급격히 어려워진 상황에서 북측 「조선적십자회」가 「대한적십자회」에 구호물품의 제공을 요청해 옴에 따라 1995년 말부터 식량 비료 의약품 등 물자들이 제공되고 있다.

이어 2000년 남북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이산가족 문제의 해결을 위해 「남북 적십자회담」이 지속 개최되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