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나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해방을 얻지 못한 채 세계열강의 소용돌이 속에서 이룩한 해방은 다시 한번 조국 회복의 기틀을 다지는 시기를 필요로 했다. 민의가 사분오열한 채 국가를 형성해 나가야만 하는 시기가 도래한 것이다.
1919년 3.1독립운동을 시작으로 상해임시정부를 거쳐 1945년 8.15 해방조국과 더불어 독립 질서를 갈망하는 겨레의 염원이 국회에서 대한민국 헌법을 제정하는 것으로 나아가게 된다. 이어 1948년 8월15일 이승만 박사가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하게 됨으로써 이날이 대한민국 건국기념일이 된다.
따라서 2016년은 광복 71주년, 건국 68주년이 되는 해라고 말할 수 있다. 조국 해방과 더불어 시대에 따라 지금까지 여러 대통령이 국정을 수행했고 그때마다 그 대통령의 정치와 비전은 똑 같지 않았다. 어쩌면 국익에 기초한 시행착오를 거듭해왔다고도 볼 수 있다.
4.19혁명, 5.18민주화운동, 그리고 6.15남북공동선언 등이 자유민주주의의 가치와 불멸을 말해주기도 한다. 민의를 모아 정책 방향을 수행하면서 국민의 방향감각을 확실하게 이끌어준 시점에 우리들은 지금 살고 있다. 한마디로 이것은 자유민주주의의 공감대였다.
단단한 기초 위에 각 계단이 마련되는 것처럼 각 대통령마다 공과 과가 있어왔다. 우리들은 이를 모두 역사로 받아들일 때 온전하고 바른 인식이 가능해진다. 미국과 소련을 통한 꼭두각시적 이념의 대립은 6.25민족상잔을 불렀고 정전협상 과정에서 포로송환 문제가 야기됐다.
이때 억류되었던 포로들은 거의 모두가 동족끼리의 전란 속에서도 고향을 그리며 자기나라의 품에 돌아가야 할 병사들이었다. 당시 거제포로수용소를 비롯한 7개 수용소의 3만7000명에 달한 억류 포로들은 반공포로 석방으로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었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소련과 중국의 공산진영은 말할 것도 없고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 및 크라크 UN군사령관 등이 시도한 휴전협정의 기세에도 포로들의 자유를 위해 포로석방을 감행했다.
해방의 시점에서 단합을 뒷전에 둔 남북의 대치는 사회민주주의와 자유민주주의 이념을 좁히지 못하고 김일성과 이승만은 국가형성의 틀을 성취하는데 행동과 신념이 같을 수가 없었다. 사회민주주의는 공산주의와 전체주의로 전락해 오늘날 유일하게 북한만이 갈수록 고립된 불행한 길을 가고 있다고 본다.
지난 7일 북한은 전 세계의 우려와 비난에도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했다. 대한민국은 곧바로 개성공단 가동 전면 중단 등 대대적인 북 제재안을 발효하기 시작했고, 미국·일본을 비롯한 전 세계 국가들도 앞으로 북한의 행보를 제재하기 위한 수단을 발효했다. 국제사회의 지속적인 경고와 규탄은 더욱 강화되고 있다.
2016년 신년사에서 김정은은 "통일을 바라는 사람과 누구라도 허심탄회하게 논의하겠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하지만 북한은 불과 5일 만에 핵실험을 진행했고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하는 등 겉과 속이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자유민주주의의 길은 그 많은 어려운 고비도 원래의 뿌리가 민의의 심저에 닿아있기 때문에 그때마다 새로운 성장과 발전을 가져 올 수가 있었다. 북한의 거듭된 도발을 억제하고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단합으로 거듭나야 한다.
국민 소득 4만불의 선진국 진입을 목전에 둔 자유민주주의 도약의 기회는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제20대 총선에서 바른 선택을 도모하는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