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런 겨울, 여자라면 누구나 좋아하고 갖고 싶어 하는 모피를 나도 예외 없이 입고 싶었다. 게다가 나이 들어서 빈티나 보이지 않으려면 모피코트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왔던 것도 사실이다.
오래 전 캐나다에 사는 친구 하나가 캐나다산 밍크코트를 한 벌 보내줬는데 그때는 너무 나이 들어 보여 어머니께 드렸는데 지금까지도 잘 입고 계신다. 그래서 나도 이제는 폼 나는 모피를 한 벌 쯤은 장만해야겠다고 벼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오랜만에 한 친구를 만나 점심을 먹으면서 나도 모피를 사야겠다고 얘기를 했더니 친구가 펄쩍 뛰면서 말했다.
"얘, 모피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너 알기나 하고 그런 소리하냐?"로 시작해서 다양한 모피가 어떤 동물 학대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는지를 얘기하는데 그 자리에서 나는 토할 뻔했다.
모피를 가진 대부분의 동물들은 산채로 가죽이 벗겨진다. 몽둥이로 때려잡는 것도 있는데 몸통을 때리면 상품에 하자가 생길 수도 있으니 주로 머리를 쳐서 죽인다. 그렇게 죽은 놈은 그나마 다행이다. 토끼나 오리·거위 등은 산 채로 사지를 묶어 털이 뽑힌다.
그리고 라쿤·너구리·여우 등은 몽둥이로 머리를 맞아 죽는다. 살아 있는 동물을 갈고리에 입을 끼우고 그대로 몸통에서부터 가죽을 벗기고 가죽을 벗긴 몸뚱이는 구석에 휙 던져버린다. 그러면 한동안 생명이 붙어있던 동물은 추위와 엄청난 고통에 벌벌 떨다가 죽는다.
우리가 징그러워하는 뱀. 내 친구는 뱀이 가장 불쌍하다고 했다. 가죽을 주로 사용하는 뱀은 가죽을 늘리기 위해 죽을 때까지 입에 호스를 끼워 물을 들이붓는다. 단지 가죽을 늘리기 위해서.
고가에 팔리는 하얀색 모피코트는 여성들의 로망이지만 그 흰색 모피코트는 주로 새끼 하프 물범으로 만든다는 것을 아는지. 사냥꾼들은 모피의 상품성을 위해 엄마 젖을 물고 있는 새끼 하프 물범의 머리를 때려서 죽이고 그 자리에서 가죽을 벗겨낸다.
새끼 물범들이 흘린 붉은 피가 북극의 설원에 낭자하고 작은 하프 물범의 사체가 흰 설원에 산처럼 쌓여 나뒹구는 사진. 그게 우리 인간의 잔인함을 증명하는 사진이다. 하프 물범은 자라면서 회색을 띄게 되므로 흰색인 어린 새끼일 때 잡아 가죽을 벗긴다. 눈이 동그랗고 하얀 털을 가진 귀여운 하프 물범의 얼굴을 한 번만 봤다면 흰색 모피에 결코 눈길조차 줄 수 없을 것이다.
이러고도 모피를 입고 싶냐고 묻는데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나의 무지 몽매함이 부끄러울 뿐이다. 특히 강아지를 자식처럼 키우는 애견인의 입장에서 지금 당장이라도 모피를 입지 말자는 캠페인에 나서고 싶을 정도로 모피를 만드는 과정은 잔인하다 못해 처참하다. 가죽과 껍질이 벗겨진 채 나뒹구는 동물의 사체는 오랫동안 내 마음을 아프게 하고 한없는 죄책감을 느끼게 했다.
아, 인간이 이렇게도 생명에 대해 무감각해질 수 있구나. 우리 인간은 정말 잔인한 동물이구나.
서양에서는 이런 모피 산업의 잔인성이 알려져 모피를 입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되고 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모피를 입는 것이 부를 상징한다고 여기는 허영심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서 모피를 가장 많이 수입하는 나라 중의 하나가 우리나라라는 것을 아는지. 참 부끄럽고 수치스런 일이다. 어째 우리는 맨날 이런 데는 빠지지 않고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는지.
이제 내 삶에서 퍼(FUR) 라는 단어는 없다. 모피를 입는 것은 부를 상징하는 것이 아니라, 무지와 허영을 드러내는 일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