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집회
유령집회
  • 거제신문
  • 승인 2016.03.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용민 칼럼위원

▲ 이용민 경남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지난달 24일 광화문에서는 색다른 집회가 있었다. 이른바 '무인(無人)집회' 또는 '유령집회'로 불리는 홀로그램 방식의 집회가 열린 것이다.

지난해 4월 스페인에서 '공공시설 인근 시위금지법'에 대한 항의로 이 방식의 집회가 열렸는데 그것이 세계적으로 첫 번째 사례가 되는 모양이다. 광화문집회는 그래서 세계 두 번째라는 보도가 있었다.

집회를 주최한 국제엠네스티 한국지부에서는 "우리 사회는 아직 집회시위의 자유를 폭넓게 허용하지 않는 측면이 있다"며 "홀로그램 영상을 통해 집회시위의 자유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뜻을 전달하고자 했다"고 취지를 설명했는데, 집회를 하겠다는 예고가 있은 후부터 경찰은 이 집회를 어떻게 볼 것이며 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를 두고 고심에  빠져야 했다.

여론도 이 초유의 집회에 관심을 보였고 심지어 재미있어 하기도 했다. 사실 홀로그램은 공연예술계에서 최근 간헐적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기술의 발전에 따라 조만간 새로운 형태의 공연으로 자리 잡을 것으로 예측되고 있는 장르이다.

영화와 달리 공연예술은 반복재생이 되지 않는다는 한계가 있다. 일회성 시간예술이 가지는 한계이다. 그러다 보니 매번 공연이 있을 때마다 출연진이나 공연환경의 컨디션이 결과물에 영향을 많이 미칠 수밖에 없다.

또 제작비 측면에서도 매번 출연료나 기타 경비를 지출해야 하기 때문에 입장료가 비싸질 수밖에 없다. 물론 현장성이 가지는 매력은 그 어떤 것으로도 바꿀 수 없지만 관객 입장에선 영상예술에 비해 가성비가 확 떨어져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공연예술의 특성 혹은 한계 때문에 오래 전부터 공연예술의 위기와 대안이 논의돼 왔다.

그런 대안 중 하나가 홀로그램이다. 이번 집회 영상을 보니 완성도는 많이 떨어져 보였다. 시도 자체에 좀 더 의미를 둔 듯 집회를 작품으로 접근해 본다면 높은 점수를 주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사실 공연예술계에선 5~6년 전부터 김덕수사물놀이패, 소녀시대, 싸이 등이 홀로그램 공연을 선보인 바 있다. 싸이가 강남스타일로 한창 잘 나갈 때는 얼마나 찾는 곳이 많았겠는가.

손오공처럼 분신술이라도 쓰고 싶지 않았을까. 홀로그램은 그래서 아티스트와 관객이 적당한 지점에서 적은 비용으로 만날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홀로(holo)란 그리스어로 '전체'라는 의미가 있고 그램(gram)은 '메시지' 또는 '정보'란 뜻이 있어 완전한 정보나 이미지를 나타내는 말이다. 홀로그램은 대상이 되는 물체의 3차원 입체상을 재생한다. 따라서 여러 각도에서 물체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다.

홀로그램을 처음 만든 사람은 1948년, 헝가리 태생의 물리학자인 데니스 가보인데 당시에는 레이저가 발명되기 전이기 때문에 선명한 물체의 상을 기록할 수 없었지만 이후 레이저가 발명되면서 선명한 홀로그램을 만들 수 있었다. 향후 기술적 발전 정도는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가속화될 수 있고 적용 분야도 다양해 질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광화문에서 시연된 것은 미리 촬영한 시위영상을 가로 10m, 세로 3m 홀로그램 투명스크린에 반사하는 방식이었다. 아무래도 거리에서 하다 보니 기술을 구사하는데 무리가 있었을 것이다.

공연장에선 지원체계가 잘 갖춰져 있고 음향과의 매칭도 잘 이뤄지니 전혀 다른 퀄리티를 구현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이 홀로그램은 우리가 어릴 때 운동화나 가방의 장식으로도 쓰였고 CD의 레이블이나 지폐 같은 곳에도 복제방지용으로 적용이 되고 있다.

빛과의 각도에 따라 반짝반짝 변하는 이미지 때문에 이리저리 기울여 가며 신기해했던 경험들이 있을 것이다. 일각에서는 공연계에서 사용되는 기술이 엄밀히 보면 홀로그램이 아니라는 문제제기도 있어왔다.

하지만 이미 한 장르의 공식용어로 자리 잡아 가는 중이라 굳이 구분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공연에 쓰이는 기술을 유사홀로그램이라고 따로 구분하기도 한다.

뉴스를 보니 콘텐츠진흥원에서 싱가폴의 대표적인 휴양지인 센토사섬에  'K-POP 융복합 홀로그램 공연장'을 선보인다고 한다. 공연장에서는 아이돌그룹 '원더걸스'와 '2PM', 'GOT7'의 공연이 홀로그램과 프로젝션 맵핑 기술을 통해 선보일 예정이라 하니 우리의 문화기술을 해외에 알리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조만간 카라얀이 베를린필과 함께 하는 홀로그램 연주를 대형공연장에 앉아 저렴한 비용으로 즐길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것이다. 홀로그램 못지않게 음향디자인이 중요해지는 시점이다.

이제 우리는 유령과도 소통해야 하는 흥미로운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