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 현종(顯宗) 때 당시(唐詩)로는 최고의 시인으로 이름을 날렸던 백곡(栢谷) 김득신(金得臣·1604~1684)은 어려서 바보 소리를 들었지만 책읽기를 좋아해서 얼마나 읽었던지 독서기에 1만번 이상 읽은 책이 36권이요, 1만번 이하는 기록조차 하지 않았다. '사기'의 '백이열전'은 11만3000번을 읽은 사람이다.
한식날 하인과 길을 가다가 시 한 구절이 떠올랐다 '마상봉한식(馬上逢寒食·말 위에서 한식을 만나니)'이었다. 그런데 다음 대구(對句)가 생각나지 않아 끙끙대자 하인이 대뜸 '도중속모춘(途中屬暮春·도중에 늦은 봄을 맞이하였네)' 하자 깜짝 놀란 김득신이 말에서 내리더니 "네 재주가 나보다 나으니 이제부터 내가 네 말구종을 들겠다" 하며 말에서 내리자 하인이 "나으리가 날마다 외우시던 당시(唐詩)가 아닙니까?" 하였다. 그제서야 "아 참 그렇네!"
송(宋)나라 인종 때 석학 송공수(宋公垂)는 괴상한 버릇이 있었다. 그가 변소 갈 때 책을 가지고 가서 크게 읽는 탓에 책 읽는 소리가 나면 그가 용변 중이구나 하고 수군거렸다.
옛날의 독서법은 눈으로 읽지 않고 소리로 읽는 독서였다. 몸을 좌우로 흔들면서 리듬을 타며 읽었다. 이를 인성구기(因聲求氣)라 한다. 소리를 통해 기운을 구한다는 뜻이다.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사랑채에서 들려오는 어른들의 글 읽는 소리를 들으며 자랐다.
그런데 요즘 책 읽는 소리가 그쳤다. 글에는 리듬이 있다. 좋은 글일수록 리듬이 살아 있다. 소리내어 읽어야 리듬을 몸으로 느낄 수 있다.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독서법은 낭독이다. 책 읽는 소리가 들리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