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동마을에 여양 진씨의 세력이 컸던 150여년 전 진씨들은 크고 작은 관직에 종사하며 가문을 일으키고 자손을 번창시켜 나갔다. 통정대부의 부인인 숙부인 완산 이씨 역시 현숙한 여인으로서 지아비를 섬기고 가솔을 거느리는 어진 사람이었다고 한다. 세월이 흘러 통정대부가 먼저 세상을 떠나고 홀로 남은 부인은 우연히 꿈을 꿨는데 백발의 한 노인이 부인에게 지금의 바람의언덕을 가리키며 저곳에 살게 되리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부인은 죽기 전 노인의 예언대로 지금의 바람의 언덕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겼고, 당시 바람 많은 염소떼 방목지였던 그곳에 묻히게 됐다. 남편은 집안의 관례대로 학동 바우산소에 있으니 묘하게도 바람의언덕과는 정면으로 마주보고 있다. 진씨 부부는 150여년이 지난 지금도 한시도 서로를 놓지 않고 있는 셈이다.
작년 12월 거제스토리텔링작가협회에서 '거제도 섬길따라 이야기'를 펴냈다. 여기 문득련 작가가 풀어낸 '바람의언덕을 지키는 무덤 앞에서'에 발굴한 이야기가 참 가치 있어 두루 소개할 만하다.
남부면 갈곶리의 바람의언덕은 그 이름만으로도 톡톡한 값어치를 하고 있는 관광명소가 됐다. 대동강물을 판 김선달 이후 바람을 팔아 서정을 간직하는 곳이란 작가의 비유가 재미있다. 이런 아름다운 사랑이 있는 바람의언덕에 와서 그저 바람만 쐬고 돌아간다면 '해질녘 노을로 바우산을 붉게 물들이는 이들의 사랑'이 얼마나 헛되어 보이겠는가.
이 사랑 이야기를 듣는 순간, 이야기를 기념하고 상품화해서 팔면 대박 나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바람의언덕 무덤 앞에 진씨 부부의 간절한 사랑이야기를 관광객이 보게 하고 여기를 다녀 간 연인들은 진씨 부부처럼 원앙같은 사랑을 이루게 되리라는 믿음을 팔면 이보다 더 좋은 관광상품이 어디 있겠는가. 사랑과 바람과 언덕과 바다가 잘 융합된 기념품을 만들어 팔면 아름다운 자연경관 앞에서 사랑이라는 진한 감동을 선물받는 여행객은 아마 평생 거제를 기억하게 되지 않을까.
이야기 만들어 팔 것이 이 뿐이랴. 반공포로 출신의 시인 김수영이 거제포로수용소에서 미군 군의관의 통역을 하며 거즈를 개키던 이야기는 어떤가. 포로수용소 막사를 찾는 많은 관광객이 때아닌 시인 김수영을 발견하게 된다면, 그의 시를 한 줄 읽게 된다면 그들이 다시 만나게 될 김수영은 거제포로수용소에 있게 되는 것이다.
'섬이 떠내려 온다' 소리치자 그대로 멈춰 버렸다는 안섬(내도)과 밖섬(외도)의 전설은 어떤가. 발견되지 못한 이야기, 아름다운 경관에 사람들의 마음까지 머물게 하는 그런 이야기가 사라지기 전 하루빨리 정리하고 체계화해 상품으로 만들어 팔아 보자. 관광객이 모여드는 봄철이 시작되면 설레기도 하지만 긴장감에 더 압박당한다. 향후 관광이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은 점점 커 갈 것이다. 때마침 조선업에 치우친 지역경제 구조개선을 위해 다양한 관광 인프라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는 소식은 반길만하다.
천혜의 절경을 갖춘 것에 비해 관광산업은 많이 낙후되어 있다는 염려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란 큰 기대를 가진다. 유연성 있고 역동적인 거제시의 관광정책에 큰 희망을 걸어 봄직하다. 기대만큼 성공적인 관광산업 활성화를 위해 거제만의 이야기를 기념품으로 만들어 팔아 보자는 것이다.
하드웨어는 잘 갖춰졌는데 감성을 자극하는 소프트웨어가 부족하면 일시적인 힐링은 얻겠지만, 감동은 전해질 수 없다. 하지만 문화시설이나 유적에 이야기를 만들어 팔면 몇 배의 부가가치와 감동을 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