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의 등장인물들 가운데 필자 눈에 띄는 사람은 주인공 검사가 아닌 신문사 논설 주간이다. 왜냐하면 모든 음모와 계략이 그로 인해 시작되기 때문이다. 한 언론인의 언행이 전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영화는 잘 묘사하고 있다.
현실 정치와 사회는 어떠한가? 4.13 총선으로 떠들썩한 시기이다. 멀리 해외에서 이를 바라보는 필자에게 총선은 또 다른 영화 한편을 연상케 한다.
먼저 3월2일 국회에서 여야가 합의한 선거구 획정은 한국의 패거리 정치 집단이 자신들의 관습적인 정치문화를 드러내고 있는 사례이다.
선거구 획정 과정에서 선거구획정위원회와 여야 정치인들은 지역의 역사성은 외면한 체, 자신들에게 유리한 지역 선점을 위해 늑장을 부려왔다.
결국 지역구 의석은 7석이 늘어난 253석, 그리고 비례대표 의석은 46석으로 결정됐다. 오직 선거에서의 승리를 위한 의석 다툼이었으나, 어느 정당도 결과에 대한 만족은 찾아 볼 수 없다.
절차와 결과에 대해 잘못을 지적하는 이들에게 정당과 정치인들은 여전히 유아독존이다. 선거에서 국민들은 철저히 배제되는 순간이다. 자신의 선거구가 사라져 맨붕에 빠진 후보자들은 분개했다. 지금까지 공들였던 자신들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갔다고. 이들의 언행에도 역시 국민(지역민)은 없다.
두 번째로 나타나는 촌극은 후보자들의 공천 분쟁이다. 정당 간의 공천 경쟁은 새누리당과 더민주당 그리고 국민의당과 정의당 모두가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정당을 대표할 주자들의 선정은 선거의 승패는 물론 향후 정당 조직을 위한 운영자 선발이기 때문일 것이다. 새누리당은 잘 나가는 종편 패널들을 영입해 눈길을 끌었다. 또, 초선도 아닌 중진 의원들의 내부 공천 심사는 더욱더 가관이다.
친박과 비박, 그리고 친박 가운데 다시 진박(진정한 친박)을 가려내는 새누리당의 공천사투는 유행어만을 만들어내는 코미디 한마당이다. 그러나 내부에서는 공천에 목숨을 걸고 있는 예비 후보자들에게 정당의 공천관리위원회는 위엄적 존재이다. 이에 공천을 빌미로, 조직을 강화하는 모습이 지극히 순치(馴致)적이다.
세 번째로 또 하나의 극명한 비극은 위에 기술했던 정부 여당의 안하무인, 유아독존의 정치 관습이 야당 정치인들, 즉 더민주, 국민의당 그리고 정의당 모두가 매한가지라는 사실이다.
위와 같은 트래지코미디가 계속되는 지금, 언론은 4.13 총선을 어떻게 보도하고 있는가? 중앙지에서는 연일 정당 간의 공천 과정을 보도하며, 드러나는 탈락자들과 후보 확정자들의 스토리 생산에 매진하고 있다. 선거구 획정은 명실상부, 여야의 합의로 마무리된 합리적 결과물로 선거가 끝나면 자연히 소멸될 이슈이다.
이제 정당 간의 후보자들이 결정되면, 본격적인 지역 유세가 시작될 것이다. 이제까지 외면됐던 지역과 지역민들이 잠시 잠깐 저들의 공연에 등장할 차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론은 투표를 강요할 것이다. 선거라는 제도에 대한 국민의 권리와 의무를 다하도록 신문과 방송은 선전할 것이다.
한 번도 표현의 자유나 집회의 자유 또는 결사의 자유가 국민의 기본권이라고 귀띔도 없던 언론이 투표의 권리를 강요할 것이다. 선거의 결과는 중요하지 않다. 더 주요한 것은 선거 전후에 드러나는 코미디를 비판할 수 있는 국민(지역민)들의 정치 참여이다. 선거에서 그리고 정치에서 배제된 지역과 지역민들의 존재감을 보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