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기억, 그리고 안전
그날의 기억, 그리고 안전
  • 배창일 기자
  • 승인 2016.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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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창일 편집국장
2년 전 4월16일은 세월호가 침몰한 날이다. 그날의 충격과 아픔이 아직도 생생한데 어느새 2년이 지났다. 수백 명의 학생들이 타고 있는 선박이 서서히 침몰하는 모습을 수천만 명이 목격했다.

그 긴 시간 동안 희생자들이 안에서 겪었을 공포와 고통, 그리고 그들이 죽어가며 찍은 사진과 동영상을 수많은 국민들이 보고 느꼈다.

얼마 전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교사의 유가족이 쓴 책이 발간됐다. 교사를 꿈꾸며 그 꿈을 이뤘던 한 소녀를 지켜본 어머니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어려서부터 '선생님이 어울리는 천사'로 불렸던 한 소녀는 꿈을 이룬 날 "항상 학생을 생각하는 선생님이 되겠다"고 다짐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소녀의 꿈은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와 함께 사라졌다.

꿈을 이룬 지 2년 만에 떠난 첫 수학여행에서 단원고 전수영 교사는 목숨을 잃었다. 절체절명의 순간에서조차 지키려 했던 사랑하는 제자 250명과 함께 영원한 수학여행을 떠난 것이다. 평소 수영 실력이 뛰어난데다 탈출이 비교적 쉬웠던 5층에 있었지만, 그는 제자들을 구하러 4층으로, 3층으로 내려갔다.

참사 당일 오전 9시11분, 어머니에게 남긴 마지막 메시지는 "아이들 구명조끼 입혔어. 미안해"였다. 34일 만에 어머니 품으로 돌아온 전 교사에게는 구명조끼가 입혀져 있지 않았다고 한다.

'4월이구나, 수영아'는 전 교사의 어머니가 지난 2년간 눈물로 쓴 딸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그동안 조명받지 못했던 세월호 희생교사 유가족의 복잡한 심정을 담았다. 자식의 의연한 죽음 앞에 눈물을 감춰야 했던, 자식을 잃은 학부모들에게 끝없는 부채감에 시달려야 했던 심정이 절절하게 녹아 있다.

딸을 잃고도 유가족이라고 선뜻 나서지 못한 채 팽목항과 진도체육관에서 자원봉사 청소 활동을 하며 딸의 주검을 기다려야 했던 어머니의 슬픔. 2년 전 그날 이후, 지옥 같은 세상에서 어머니가 '살아가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딸의 흔적을 찾고, 딸에게 일기를 쓰는 일이었다.

어머니는 딸에게 편지를 쓸 때마다 다짐한다. "딸을 위해서라도 그날의 그 아침을, 아이들을 잊지 않아야 한다. '항상 학생을 생각하는 선생님이 되겠다'던 딸의 꿈을 온전하게 이뤄주기 위해서라도 아이들이 바라는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1986년 4월26일은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가 일어난 날이다. 30년의 시차를 두고 각각 한국과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난 그 두 사건은 시간의 차이와 공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한 가지 목소리를 전하고 있다. 우리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바꿀 수도 포기할 수도 없는 가치는 '안전과 생명'이라는 것이다.

이 둘은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수많은 생명이 아무런 잘못없이 희생되었건만 책임자들이 제대로 처벌받지 않았고 그 죽음이 아프게 전하는 메시지가, 그 목소리가 아직도 공허하게 메아리치고 있을 뿐이라는 점이다.

이 두 사건은 과거의 지나간 일이 아니라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결코 잊혀져서는 안되는 일이 됐다. '위험사회'의 저자 울리히 벡 교수는 "심각한 재난은 '해방적 파국'으로 작용해서 많은 개인과 사회를 '탈바꿈' 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세계 모두가 함께 목격한 사건들이었지만 체르노빌 핵참사와 후쿠시마 핵참사는 여러 사회에 다른 결과를 낳았다. 이 사건들이 전하는 메시지에 각 사회와 시민이 얼마나 공명했는지가 달랐기 때문이다.

독일에서는 2002년 당시 사회민주당과 녹색당 연립정부가 원자력법을 개정해 원자로 수명을 평균 32년으로 해서 2021년까지 독일 내 원자로를 단계적으로 폐쇄하기로 했다. 체르노빌 핵참사가 결정적 계기였다.

그러나 2009년 총선을 통해 메르켈 총리의 기독교민주연합이 자유민주당과 연정을 수립한 이듬해인 2010년, 독일 정부는 원자로 수명을 평균 12년 더 연장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다시 후쿠시마 핵참사가 일어나면서 메르켈 총리는 자신의 결정을 번복, 노후 원자로 8기의 가동을 즉각 중단하고 남은 9기를 2022년까지 순차적으로 폐쇄하기로 했다. 물리학자 출신으로서 원전의 안전한 이용을 믿었던 메르켈은 당시 이렇게 말했다.

"후쿠시마가 나의 생각을 바꾸었다. 우리에겐 안전이 무엇보다 가장 소중한 가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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