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문자(死文字)와 활문학(活文學) ①
사문자(死文字)와 활문학(活文學) ①
  • 거제신문
  • 승인 2007.11.08
  • 호수 1
  •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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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명 선생 재조명

예술에 특이한 재능을 가진 우리 민족으로 과거 몇천년 동안 아직 한번도 문학다운 문학-생명있는 문학을 건설하여 보지 못한 것은 물론 한문의 유독(流毒)이다.

불편하기 짝이없는 한문-만권의 책을 읽고야 쓸 수 있고 만권의 책을 읽고야 볼 수 있는 한문-특히 춘추전국, 진한당송의 죽은 문체로 시대가 다르고 풍속, 습관이 판이한 우리 민족의 손에서 어찌 가치 있는 창작-생명있는 문학이 산출될 수 있으랴!

사(死) 문자는 결코 활(活)문학을 산출(産出)치 못한다. 죽은 한문-특히 고문-은 그의 원적지인 중국에서도 참으로 생명있는 활문학을 산출치 못하였다.

근세 중국의 저작 중 제일 신문학의 가치가 있다하는 홍루몽, 수호지, 서유기, 유림외사, 경화록-같은 것은 모두 백화(白話)-중국의 국어문-으로 된 것이다.

현재 중국의 신문학비평가로 유명한 호적군은 그의 ‘건설적 문학혁명론’중에서 ‘고금 중국의 문학 중 조금이라도 가치있고 조금이라도 생명있는 문학은 모두 백화이거나 또는 백화에 가까운 것이다. 그 밖은 모두 생기없는 고동이니 박물원의 진열품에 지나지 못한다’고 단언하였다.

사문자와 활문학이 얼마나 양립할 수 없는 것인지는 이것만으로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영문학, 불문학, 독문학이 세계의 문단에서 현재와 같이 필요한 지위를 점령할 때까지에는 그네들의 국어 해방운동이 절대로 필요하였다.

만일 15세기 전후에 그네들의 국어가 해방되지 못하고 세익스피어, 괴테, 유고… 같은 문호들이 죽은 라틴말로 저작하게 되었다면 그네들은 결코 함래트, 푸아스터, 애사… 같은 생명있는 문학을 건설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어느 민족 어느 시대를 물론하고 그네들 일용의 언어와 도무지 부합되지 않는 죽은 문자로 생명있는 문학…가치있는 저작은 산출하지 못하였다.

따라서 현재 우리의 신문학 건설운동은 그의 제일보가 이와 같은-우리 현재의 언어와 부합되지 않는 모든 사(死)문자를 폐지하고 우리의 언어 우리의 문자를 부활시키는데 있다.

숨어있는 우리 문학이 세계의 문단에 나타날 때까지에는 무엇보다도 국어 해방운동이 절대로 필요한 것이다.

진한당송체의 고문은 물론이오 소위 국한문이라는 혼용문, 구문식의 문체, 자의(字意)와 어의(語意)가 부합되지 않는 고전(古典)-문자, 궁변한 한자-이 모든 것을 전부 버리고 우리 현재의 언어를 표준하여 완전한 국어문-활문자를 건설하여야겠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될 수 없다. 몇 백년 동안 함부로 사용한 소치로 난잡-무질서하게 되고만 우리 국문은 문법과 구점(句點), 부호로 정리하여야겠고, 한걸음 더 나아가 빈약한 우리 문학은 내용의 충실을 도모하여야겠다.

이 몇가지를 조건으로 들면 아래와 같다.
1. 현재의 우리말대로 쓸 것
2. 한자를 제한할 것
3. 문법에 맞추어 쓸 것
4. 구점과 부호를 사용할 것
5. 글을 위하여 글을 쓰지 말 것
6. 번역은 번역으로 창작은 창작으로 할 것

이 여섯가지에 대하여 일일이 내용을 설명하기 전에 순서상의 필요로 나는 신문학과 구문학의 차이점부터 말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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