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협상력
우리의 협상력
  • 거제신문
  • 승인 2016.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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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광 칼럼위원

▲ 김미광 거제연초고 교사
가습기 살균제 문제가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제품 불매 운동이 시작되자 본사 임원들이 나서서 사과하니 어쩌니 하는데 왜 이들이 이렇게 늦게 반응하고 늦게 태도를 바꾸는지에 대해 화가 나는 와중에, 독일의 자동차회사 폭스바겐의 태도가 무더운 이 날씨에 짜증을 돋운다.

배출가스 조작으로 신뢰도가 추락한 폭스바겐은 이미지 개선을 위해 미국과 일본 등지에서 다양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했지만 유독 우리나라에서만은 무성의함으로 일관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금전적 보상 방안에 합의하여 1인당 5천 달러씩 배상하기로 합의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또 일본에서는 폭스바겐의 인기 모델인 '골프'의 가격을 170여만 원 내려서 판매중이고 일본 고객에 무상 수리 제공 기간 연장 등 서비스도 개선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에서는 어떤가. 국내 피해자는 아직 별다른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는 걸로 안다. 문제된 차량의 리콜을 실시할 계획이라지만 정확한 계획은 알려진 바 없고 환경부에 제출한 리콜계획서는 달랑 두 문장으로 무성의한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이런 일이 어디 한 두 번인가. 최근에 비자카드사는 우리나라 국민에게만 카드 사용 수수료를 올리겠다고 발표했고, 해외에서 유명하다는 벨기에 초콜릿도 한국에만 들어오면 외국에서 사는 가격의 두 배, 명품 가방 가격은 두 말하면 숨 가프다.

왜 이런 가격과 보상 협상에서 우리는 항상 밀리고, 글로벌 기업들이 유독 우리나라에만 이런 차별적인 대우를 제시하는가. 왜 대한민국에게만 수수료를 올리고 우리는 항상 비싼 가격으로 뭔가를 사야하는가.

단 몇 초면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아내고 다른 나라에서 한 협상 내용이 밝혀지는 이 시대에 이런 불합리한 조건을 제시해도 대한민국 사람들은 그들의 물건을 꾸준히 구매할 것이라는 확고한 자신감, 불매운동이 잠시 있을지라도 한국인들은 금방 잊어버리고 다시 그들의 명품 구매에 매진할 것이기 때문에 그 정도의 불이익쯤은 감수할 수 있다는 무너지지 않는 믿음, 아마 이런 믿음이 있기에 한국에서만 빈약한 협상안을 제시하고, 매스컴에 나와 몇 번 고개 숙여 주고 반성하는 척 하면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안이함이 이런 사태를 만드는 것이 아닌가 한다.

명품 가방 하나쯤은 가지고 있어야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외제차를 타야 사람들이 자신을 깔보지 않는다는 왜곡된 자신감이 생기는 우리의 빈약한 자아상을 재빨리 파악한 다국적기업들은 이런 소동이 결코 오래가지 않을 것이고, 한국 사회에서 명품의 판매량이 결코 줄어들거나 매출이 폭락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그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학습을 통해 알게 되었을 것이다.

나는 이점이 마치 나의 치부를 들킨 것처럼 화가 난다. 한국인의 생리를 파악한 다국적 기업들의 상술에 번번이 당하는 우리는 그들에게서는 진정한 소비자가 아니라 봉이며 돈벌이 상대에 불과하다.

다국적 기업으로부터 이렇게 억울하게 경제적으로도 손실을 보고 또 무시를 당하는데는 우리의 태도가 단단히 한 몫 거들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으며 똘똘하게 협상할 줄 아는 국민이라면 그들이 감히 우리를 '을' 취급할 할 수 있을 것인가.

어떻게 대한민국에만 수수료를 0.1% 올리겠다는 발언을 공공연하게 할 수 있는가. 어찌 우리를 배알도 없는 국민으로 취급한단 말인가. 그러면 우리는 굽신굽신 하면서 "예, 예, 올려드립죠" 할 줄 아는 모양인가.

나는 그 어느 시대보다 오늘날 우리에게 지혜롭고 강력한 협상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폭스바겐사에게 왜 우리만 보상 계획이 없는지, 비자카드사는 왜 우리에게만 수수료를 더 내야하는지 그들은 타당한 이유를 제시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폭스바겐은 안사고 벨기에 초콜릿은 안 먹고 비자카드는 안 쓰겠다고 해야 한다.

나는 더 이상 다국적기업에게 우리가 당하는 꼴을 보고 싶지 않다. 이런저런 모양으로 야금야금 우리에게서 이익을 취해가고 그것도 모자라 대놓고 다른 나라와 차별을 하는 기업들이 사방에 적처럼 둘러 싼 이 시대에 우리는 협상력을 길러야한다. 그러려면 먼저 우리는 하나로 힘을 모아야한다. 개인의 이익을 위해 우리끼리 서로 물어뜯고 할퀴는 것은 이제 그만하자. 부디.

고려시대, 거란 장수 소손녕과 담판을 벌여 강동 6주를 돌려받은 탁월한 외교관이었던 서희 같은 협상력을 가진 한 인물이 참으로 아쉬운 시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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