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假面)
탈(假面)
  • 거제신문
  • 승인 2007.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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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무엇이든 누르면 터져나기 마련이다. 엄격한 신분사회의 특권층인 조선양반들은 천민이나 서민계층을 쥐락펴락하면서도 적당하게 풀어주는 여유도 있었는데 그 대표적인 것의 하나가 탈춤놀음이다.

탈을 쓰고 양반을 희롱하고, 중들의 위선을 풍자하고, 처첩간의 갈등 등 사회제도를 비판하면서 구경꾼도 함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영화 「왕의 남자」에서는 왕도 조롱꺼리였다. 만일 탈을 쓰지 않고 말했다가는 당장 결딴 날 일이지만 탈놀음에서는 무슨 말을 해도 그냥 넘기기 일쑤였고, 오히려 양반들은 행사의 스폰서가 되어 경비를 부담해 주곤 했다. 탈놀음은 이런 사회적 축제 메커니즘이었다.

탈놀이의 기원은 신라 처용무가 문헌상 첫 기록이지만 부산 동삼동 패총에서 발견된 조개껍데기에 두 눈과 입이 뚫려 있는 것으로 보아 오래 전부터 가면은 존재했다고 보아지고, 요즘도 함진아비의 오징어 가면은 흔히 보는 사회상이다.

유럽의 가면극은 상류계층의 유희인 궁중연회였다면 우리 탈놀음은 민중들의 놀이면서 주술적 의미도 있었다. 곧 「탈」은 우리말의 「탈나다」처럼 재앙이나 병을 뜻하는 탈을 탈로써 굴복시키는 액땜이 그것이다.

그러므로 탈을 만들 때 아무렇게 만들면 안되고 함부로 손을 대거나 엿보는 것조차 금기였다. 그리고 행사가 끝나면 탈은 모두 불태워지거나 마을에서 떨어진 당집에 보관하게 된다.

「하회탈」의 전설이 그 좋은 예다. 하회마을 허도령이 탈을 만들고 있는데, 그를 사모하던 처녀가 몰래 엿보는 바람에 총각이 피를 토하고 죽는다. 총각이 만들다가 만 탈이 「이매」탈인데  이매탈이 턱이 없는 것은 그 까닭이다.

탈로는 유일하게 국보인 하회탈은 모두 13종이지만 그 중 별채, 총각, 떡다리탈이 분실되었다. 그런데 이번에 약 400년 전에 만들어진 우리 탈이 일본 규슈의 구마모토현에서 발견되었다. 그리고 이 탈이 우리가 잃어버린 세 개의 탈 가운데 하나인 별채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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