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술의 도시 파리를 처음 방문했을 때, 예술품 그 자체였던 고풍스런 건축물들과 미술관에서 교과서나 화집에서 보던 불후의 명작들에 감동하다 기죽었던 동방의 이방인은 기억한다.
목마른 순례자처럼 다른 미술관으로 향하다 우연히 만난 익숙한 얼굴, 마에스트로 정명훈(鄭明勳)의 대형 걸개그림은 감격스러웠다. 극장 외벽을 덮고있던 정명훈 지휘자의 공연안내 홍보판을 보며 위축되어있던 사내가 느낀 ‘대한민국’이란 자부심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해외에 나가면 누구나 다 애국자가 된다지만 이집트 카이로 나일강 야경 속에서 눈에 들어온 삼성이란 브랜드, 패션 중심지 이탈리아 밀라노 거리에서 본 엘지(LG) 광고판 등 상업용 광고와는 비교할 수 없었다.
이탈리아어로 마에스트로는 대가, 거장(巨匠)이란 뜻이다. ‘마에스트로 정명훈’은 음악애호가라면 누구나 스스럼없이 부르는 존칭으로 현존하는 지휘자 중 최고라는데 이견은 없을 것이다. 예술가들에게 순위를 매기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예술은 개성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공연료나 작품가가 평가기준이지만 금전적인 것으로 예술가나 예술품을 평가하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 불멸의 명성, ‘정명훈’이란 브랜드 파워를 반추해 보자.
1974년 냉전이 정점일 때, 적성국인 미국인의 신분으로 소련의 심장부 모스크바에서 열린 차이코프스키 국제 콩쿠르에서 피아노부문 2등을 수상했던 정명훈. 당연히 1등은 소련인이었고 3-4등도 공산권 연주자였는데 진정 실력이 2등이었을까?
그 후 지휘자의 길을 걷던 정명훈은 1989년, 36세에 프랑스 국립 바스티유오페라단 음악감독 겸 상임지휘자로 발탁되는데 프랑스혁명 200주년을 기념해 성대하게 개관한 바스티유오페라를 맡긴 콧대 높은 예술의 종주국 프랑스의 선택은 무슨 의미일까?
또한 일본 최고라는 자리를 놓고 NHK 교향악단과 자웅을 겨루려던 도쿄 필하모니 교향악단이 정명훈을 영입한 이유는 무엇일까?
음악적 리더십 ‘정명훈 효과’ 지존의 길
인천아트센터가 들어설 송도국제도시 부지 개발권을 가진 송도국제도시개발유한회사(NSIC)는 정명훈이 지휘하는 아시아 필하모닉오케스트라(APO)를 유치하는 조건으로 8천700억원의 아트센터 사업추진에 동의했다고 한다.
문화예술 인프라 구축에 아트센터를 중심으로 하여 세계적인 수준의 공연을 펼쳐 인천을 국제적인 문화명품도시로의 비상을 꿈꾸는 것이다. 서울시로부터 해마다 지원받는 예산이 120억원이라는 서울시향은 2005년까지만 해도 티켓 판매와 협찬을 합친 수입이 2억원 정도였는데 정명훈 지휘자가 온 작년엔 23억 원으로 늘어났고 올해는 30억 원에 이를 전망이라 한다.
그렇다고 ‘공공성’을 지닌 시립 교향악단이 무작정 티켓 가격을 올리고, 수익성 있는 공연만을 추구한 것은 아니며 ‘찾아가는 음악회’를 만들어 전국 곳곳을 찾아다니며 무료로 소외계층 문화 향유에도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얼마전 62번째 유엔의 날 미국 뉴욕 유엔총회장과 카네기홀에서 가진 서울시향 공연을 본 관객은 ‘2년만에 이렇게 달라졌다니 믿을 수 없다’며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표현으로 놀라워했다고 언론은 전했다.
‘최고 지휘자로서 검증된 실력과 능력으로 세계적 명문 오케스트라 비전을 제시하여 단원들의 열정을 이끌어낸 리더가 조직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면 조직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가?’를 보여준 서울시향의 변신을 이끈 음악적 리더십을 ‘정명훈 효과’라고 한다.
사랑 잃고 독신으로 산 남자의 고독과 조우
실력위주의 공명정대한 인사원칙으로 서울시향 모든 단원을 오디션으로 새로 뽑았고 공석이 있어도 수준에 미달하는 단원은 절대 뽑지 않았으며 차라리 연주 때마다 능력이 되는 외부 연주자를 데려온다고 한다.
그리고 세계 유명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3분의 1 정도의 임금에도 정명훈과 함께 연주하기위해 서울행 비행기를 탄다고 하며 국내외에서 여는 오디션은 국내 대기업 취업 경쟁률보다 더 높다고 한다. 이처럼 지존(至尊)의 명성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오케스트라는 꽃이 아니라 마치 나무 같아서 자라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정명훈 리더십의 실체를 직접 확인하고 싶지않은가?
11월의 마지막 밤 마에스트로 정명훈과 피아노 신동 김선욱이 ‘가을남자 브람스’와 함께 경남 거제도 거제문화예술회관에 온다. 슈만에게 사랑하는 여인을 빼앗기고 평생을 독신으로 산 브람스의 고독과 열정을 만날 수 있는 흔치않은 기회다.
평생 동안 한 여자만 사랑한 순정파 남자와 함께 가을의 서정성과 우수가 짙은 음악에로의 여행을 떠나보자. 사랑을 팔고 사는 꽃바람 속의 현대사회에서는 만나기 어려운 진짜 사나이, 브람스를 아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