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내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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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지영 기자
  • 승인 2016.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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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효자·효부상 수상…칠천도 옥계마을 김금순씨

초로의 여인이 단상에 섰다. 생전 남 앞에 설 일이 없었던 그녀는 단정하게 갖춰 입은 한복 고름을 매만지며 긴장된 마음을 추슬렀다. 하지만 쏟아지는 카메라 후레쉬 세례는 여간 어색한 것이 아니다.

대한노인회 거제시지회는 매년 노인공경과 복지에 공로가 있는 사람을 추천해 노인의 날 기념식에서 시상을 한다. 그 중 올해의 '효자효부상'은 칠천도 옥계마을 김금순씨(67)에게 돌아갔다.

그녀는 현재 거동이 불편한 96세의 어머니와 뇌경색으로 쓰러져 치료를 받고 있는 남편과 함께하고 있다. 장내의 뜨거운 박수 속에서 그녀는 "난 효자도 효부도 아니다. 그냥 그들은 나의 삶이고 내 책임인 사람들이다"라는 말로 담담히 소감을 전했다.

22살 철천도 아랫마을 아가씨는 26살 윗마을의 총각의 듬직함이 좋았다. 젊은 시어머니에 나이 든 시아버지, 남편 밑으로 5명의 시동생들이 있었지만 그랬다. 8살짜리 막내 시동생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섶을 지고 불길로 뛰어 들어간다'고 할 정도로 고생이 눈에 보이는 결혼이었지만 1년이라는 교제기간 보여준 총각의 심성은 그가 가진 조건을 덮기에 충분했고, 아가씨의 결정에도 주저함이 없었다.

지금은 3형제의 엄마이지만 시집오고 3년 동안 아이를 낳지 못해 시아버지로부터 '밥값 못한다'는 말을 고스란히 듣고 삼켜야하는 시간도 있었다.

시집간 당일부터 새댁은 양식장으로 굴을 따러 다녔고 이내 공사장의 미장일도 배웠다. 그렇게 건설현장을 누비다 삼성중공업에 들어가 15년이라는 시간을 보냈다.

그녀는 "큰 배의 선실이며 엔진이 들어선 곳에 들어서면 큰 암흑의 동굴 같다. 그 안의 공기는 얼마나 탁한지 모른다"면서도 "가르치고 시집장가 보낼 시동생들이 5명에 우리아이가 3명이었다. 옆을 돌아볼 정신이 없었다"며 지난 시간을 돌아봤다.

그렇게 22살의 아가씨는 55살의 여인이 됐다. 하지만 은퇴를 하고도 억척같이 손에서 일을 놓지 않았다. 그런 그녀를 한 없이 고마워하고 사랑해준 사람이 바로 남편과 시어머니였다. 몸은 힘들었을지 모르나 그녀의 마음은 항상 행복했다.

하늘이 샘을 한 탓인지, 그의 기둥 같았던 남편이 쓰러졌다. 5년 전 일이다. 노래 잘 부르고 놀기 좋아하고 주변사람 분위기 맞추기에 재주가 있었던 그녀의 자랑은 뇌경색이라는 병명에 꺾였다.

처음에는 추스르듯 일어나 주위에 희망을 주는가 했지만 다음해 다시 쓰러지면서 아이가 됐다. '이 좋은 사람이 어찌 이렇게 되었나'를 순간순간 되뇌인다는 그녀는 안타까움에 세월의 야속함을 탓했다.

이런 되뇌임 때문인지 그녀에게도 병마가 찾아왔다. 마치 바람처럼 가슴과 머리를 뚫고 지나간 우울증은 그녀를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죽을 곳과 죽을 방법만을 찾아 헤매는 그녀를 향해 "밥 먹어라, 왜 누워있노, 밥 먹으면 된다"라고 말하며 걱정을 하는 구십 노모와 어린아이처럼 "침 맞자"를 졸라대는 신랑은 그녀의 업이었다.

벼랑 끝에서 아들에게 연락을 하고 치료를 받으며 정상으로 돌아오기까지 4개월의 시간이 걸렸다. 이 시간들 속에서도 그녀는 단 한 번도 그들을 옆자리에서 놓지 않았다.

올 추석 욕창으로 병원에 입원했던 시어머니는 퇴원 후 '자식 고생시킨다'며 곡기를 끊으려 했고, 며느리는 시어머니의 입에 쌀 한 톨이라도 더 밀어 넣으려 실랑이를 해야 했다.

그녀는 "인명은 재천이다. 속이 안 좋아 약 한번 드신 적이 없으신 분이 음식을 마다하시니 제가 미안하다"며 "남편과 시어머니와 오래오래 아프지 말고 지금 이 상태로 살았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그 옛날 고현시내를 걸으며 손을 잡으려 했던 덩치 큰 신랑의 사랑이 부끄러워던 새댁은 지금도 이렇게 옆에 있는 신랑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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