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현에 살고 있는 하준이씨(여·42·상문동)는 최근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일운면에 살고있는 시어머니에게서 걸려온 전화였다.
시어머니는 전후 상황 설명없이 다짜고짜 "야야, 큰일났다. 남진을 봐야하나, 아니면 설운도를 봐야하나? 니 생각은 어떻노?"라고 물었다.
"예? 도대체 무슨 말씀이신지"를 몇 번을 되물은 하씨는 시어머니 질문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다.
지난 21일이 길일(吉日)이었는지 거제시 입장에서나 거제축협 입장에서나 양보할 수 없는 행사가 동시에 열렸다. 제27회 경남생활체육대축전이 거제시에서 개최되면서 개막식 행사가 시종합운동장에서 열렸고, 거제축협은 농산물유통센터 개점 1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를 같은 날 진행했다.
칠순이 된 시어머니의 고민은 이들 행사의 초대가수에게로 쏠려 있었다. 평소 텔레비전에서도 보기 힘든 설운도와 남진이라는 대형가수를 직접 볼 수 있는 기회가 왔는데 어느 쪽에 참석해야 나중에 후회가 남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지난 한 주 동안 경로당에 모여 앉아 어르신들이 이렇게 고민을 하고 있었다고 하니 웃음이 났지만 진지한 시어머니의 고민에 "글쎄요, 한 곡이라도 더 부르는 사람이 있는 곳으로 가시는게…"라고 말하다 나중에 들을 원망이 무서워 말을 얼버무렸다. 그러다 이해가 되지 않아 행사들의 날짜와 시간표를 다시 보게 됐다.
거제에서 이 같은 대형행사를 개최하면서 사전 조율이라는 것이 없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거제시의 행사나 거제축협의 행사 모두 사람이 몰리면 그만큼 보조인력이 동원돼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야 한다.
지난해 거제축협의 농산물유통센터 개장식에서 벌어진 교통대란을 이번에는 누가 조율해줄 것이며, 많지도 않은 거제경찰관과 소방 공무원들은 또 얼마나 고생을 해야 할 것인지를 생각하니 짜증이 밀려왔다.
하씨는 "거제시가 경남 전체에서 손님들을 불러 행사를 한다고 하면서 정작 집안단속도 하지 않은 것 같다"며 "'처녀가 아이를 낳아도 할 말이 있다'는 속담처럼 서로가 할 말이야 많겠지만 거제지역 전체로 본다면 치중해야 할 행사에 찬물을 끼얹는 것 같아 남 보기에도 민망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소통되지 않는 거제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