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학과 구문학 ③
신문학과 구문학 ③
  • 거제신문
  • 승인 2007.11.22
  • 호수 1
  •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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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명선생 재조명

구문학은 유희문학이요 신문학은 생명문학이다. 구문학은 그의 작자가 유희적 태도로 썼고 독자 역시 주후반여의 심심 소일거리를 읽었다.

그네들의 작자는 뜻을 얻지 못하고 포의(布衣)로 한산한 세월을 보낼 때에 유권자를 조롱하거나 또는 불평(不平)을 얻기 위하여 소설을 지었고, 미주미기(美酒美妓) 편시(片時)의 괘락을 취할 때에 자기네의 호협함을 자랑하기 위하여 시를 썼다.

‘달즉겸선처하궁즉독선기신’이라는 그네들의 유일한 목적은 일국의 재상이 되어 정치를 요리하는 것이었고 문예의 걸작을 내는 것은 그네들이 그처럼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따라서 그의 결과는 정치를 숭배하고 문예를 천대하여 고대(古代)의 순문예적 저작은 거의 전부가 허황한 거짓말이거나 가인(佳人), 재자(才子)의 음서가 아니면 자기의 유식함을 표시하기 위하여 동일구(東一句) 서일구(西一句) 주워 모은 고전의 집합체에 불과하다.

그러나 신문학은 이와 다르다. 그네들의 작자는 모두 문학을 자기의 유일한 천직으로 자각하고 자기네의 저작을 위하여서는 모든 것을 희생한다.

사회의 명예, 육체의 쾌락은 물론이요 심지어 그네들은 자기의 몸까지 바친다. 따라서 그네들의 저작 중에는 구문학에서 볼 수 없는 강한 힘과 새 정신을 볼 수 있다.

말하자면 구문학은 그의 작자(作者)가 유권자를 조롱하거나 자기를 광고하기 위하여 오락적 태도로 쓴 유희문학이요 신문학은 그의 작자가 문학을 자기의 천직으로 자각하고 힘과 정성을 다하여 쓴 생명문학이다.

신구문학의 차이점은 이것으로 마치고 다음은 나의 여섯가지 조건에 대하여 간이(簡易)히 나의 의견을 말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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