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13년 뉴욕 사교계의 스타였던 메리 제이콥스가 파티에 나가기 위해 새로 준비한 이브닝드레스를 입었다. 그런데 곤란한 일이 생겼다. 이 드레스는 실크로 만들어졌는데 너무 얇은 나머지 속이 훤히 다 비치는 것이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흰 손수건 두 장과 분홍색 리본, 그리고 얇은 줄로 가슴을 가릴 속옷을 만들게 된다. 그날 참석했던 많은 여성들이 그녀의 속옷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처음에는 옷을 여러 벌 만들어 선물했지만, 주문이 쇄도하자 1914년 11월 미국특허청에 디자인 특허를 내고 '브래지어(brassiere)'라는 상표로 본격적인 사업에 뛰어들게 된다. 그러나 사업은 실패했고 다른 회사가 특허권을 매입해 그 후 30년 간 매입액의 100만 배가 넘는 대박을 치게 된다.
그렇게 보면 브래지어의 역사는 이제 겨우 100년을 조금 넘을 뿐이다. 그 전에는 유방을 받쳐주는 방법으로 코르셋이 대신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조선시대에 한복 저고리 아래로 가슴을 감싸주는 가슴가리개가 별도로 있었다. 중국에서는 그들의 언어로 '허즈''뚜떠우'라고 부르는 비단천을 브래지어의 시초로 보고 있다.
변방을 지키던 절도사로 현종의 양자가 된 안녹산은 양귀비 보다 열네 살이나 많았지만, 그녀를 '어머니'라 부르며 접근하였다가 얼마 뒤에는 연인으로 바뀌게 된다. 어느 날 안녹산이 그녀를 안고 몸부림치다 유방에 상처를 냈고, 양귀비는 이를 감추기 위하여 붉은 비단 천으로 젖가슴을 감추게 되는데서 비롯되었다. 브래지어를 북한 문화어에서는 '젖싸개''가슴띠'라고 부르고 있고, 우리가 흔히 '브라자'라고 하는 말은 일본발음의 차용으로 우리나라에 브래지어가 들어온 것이 일제강점기임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 브래지어가 대중화된 것은 1950년대 속옷 회사가 등장하면서부터이다.
오는 12월 5일 '2016 빅토리아 시크릿 패션쇼'에서 세계적인 모델 자스민 툭스가 입고 공개할 에메랄드와 다이아몬드로 장식한 브래지어가 우리 돈으로 약 34억 원이라니 놀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