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모는 항상 고맙다. 말썽없이 잘 자라줘 고맙고, 건강해서 고맙고,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줘 또 고맙다.
자식은 늘 감사하다. 세상에 어느 누구의 칭찬보다 값진 응원을 나 하나만을 위해 보내주면서도, 자신의 희생을 희생으로 여기지 않는 당신이 감사하다.
지난 9월 집배원 3년차를 맞은 천명씨(31)는 거제우체국 정규 직원으로 발령 받았다. 임명장이 수여되는 날 함께 자리한 집배원 28년차 고참이자 아버지인 천주용씨(56)는 그 동안 아들의 수고를 어루만지듯 임명장을 바라보며 누구보다도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3년 전 대학을 졸업한 뒤 2년 동안 인도네시아로 연수를 다녀왔지만 천명씨의 미래는 불투명하기만 했다. 그때 천명씨에게 손을 내민 것은 그의 아버지였다. 당신이 가는 길을 함께 걷자며 아들의 손을 잡은 것이다.
아들은 순응했다. 고민이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지금껏 아버지가 자신에게 보여줬던 큰 나무와 같이 믿음은 자신의 미래를 맡기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집배원 생활이 시작됐고 장승포지구 한 직장에서 1년을 같이 근무했다.
몸에 익지 않은 집배일은 여느 초보 직장인의 삶처럼 녹록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버지와 직장동료들의 도움 속에 익숙함이라는 견고한 갑옷을 차례차례 덧붙일 수 있었다.
특히 다문화가족들과 영어권 외국인들의 민원을 해결하는 유창한 그의 영어실력은 장승포지구의 자랑거리가 된 지 오래이다.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지금 아버지의 손을 잡고 걸어온 이 길에 후회는 없다고 말하는 천명씨. 근무시간 중 할머니들이 건네는 '수고한다, 고생한다'는 따뜻한 말 한마디가 너무 고맙다고 한다.
천명씨는 "집배원 일을 하며 3번의 여름과 3번의 겨울을 보냈다. 당신이 어떤 세월을 사셨는지를 느끼기에, 또 자랑스럽고 감사해 앞에서 힘들다는 소리를 할 수 없었다"며 "누구의 아들이라는 것이 굴레가 될 수도 있지만 삶의 방향도 잡아주는 것 같다. 당신이 닦아 만들어 놓은 길을 잘 걸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이런 아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아버지 천주용씨 또한 기쁘고 감사하다. 고성에서 홀홀단신 옷 봇짐하나 달랑 들고 일자리 찾아 도착한 거제였다.
20대의 청춘은 무서울 게 없었다. 조선소에서도, 공사현장에서도 자신에게 맞는 옷을 입기위해 고군분투했다. 그러다 안착한 곳이 우체국이었다. 집도 척척 잘 찾고, 동네사람도 다 알아보는 그의 모습은 초등학교 학생들의 눈에 박사로 비쳐졌다.

주용씨는 "학생들이 '빨간 우체통의 박사'라는 제목의 글을 만들어 발표할 때 새삼 '보람'이라는 단어를 느꼈다"며 "화재가 난 곳을 지나가다 불속에서 사람을 구해 칭찬도 들어봤다"고 회상했다.
30년이 넘는 거제 생활 속에서 우여곡절을 겪으며 보낸 26년의 집배원 생활은 그를 지금의 자리에 반듯하게 세워놓았다. 누가 보면 거창할 것 없는 삶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자신은 집배원인 것이 자랑스럽고, 이 천직에 감사한다고 한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 자신의 아이들이 사회구성원으로 튼튼하게 자리매김하며 살고 있다는 사실 역시 자신의 직업이 만들어준 결과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 있게 그의 아들에게 집배원을 권유했다. 우직한 아버지에 또 그만큼 우직한 아들은 그 믿음을 믿고 집배원으로 대를 이어가고 있다.
'최선'이라는 단어를 아들에게 물려주고 싶다는 주용씨는"언제까지든 최선을 다하고 싶고, 아들 역시 그렇게 했으면 좋겠다"고 작은 바람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