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잉크
보이지 않는 잉크
  • 거제신문
  • 승인 2016.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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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야 골프가 거의 생활체육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보편화됐지만 한 1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쉽게 접할 수 없는 고급 스포츠였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공무원사회에서는 마음 놓고 칠 수 없는 것이 골프다. 골프를 친다하면 좀 있어 보인다는 생각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보이지 않는 잉크로 쓴 글은 특별한 화학작용을 거치지 않는 한 내용이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글이 없는 것이 아니다. 학창시절에 녹말로 쓴 편지를 경험했을 것이다. 글을 써 놓으면 그냥 흰종이에 불과하지만 불에 갖다 대면 녹말이 타면서 글씨가 보이게 된다.

'보이지 않는 잉크(invisible ink) 전략'은, 잘 드러나지 않으면서 쉽게 익힐 수 없는 지식을 연마해서 특정 집단끼리만 통하는 기호를 만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면 과거 유럽의 상류층들이 즐기는 오페라나 와인 매너 같은 것들은 평민들이 쉽게 익힐 수 없는 그들만의 문화로 우월감을 나타냈다. 골동품 수집이나 미술품을 소장하면서 고상한 품격을 은근히 내세우는 것도 마찬가지다.

조선시대 양반들은 엄격하게 지켜야 할 양반으로서의 규범과 행동양식을 통해 일반 상민들이 감히 흉내조차 내지 못할 문화를 형성한다. 박지원(朴趾源)이 쓴 골계소설 양반전에, 가산은 먹고 살만한데 신분이 상민이고 보니 어디를 가나 행세를 못하는 부자가 돈을 주고 양반을 사지만 양반이 되고 보니 양반 노릇하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그래서 결국 양반되기를 포기하고 상민으로 돌아간다는 내용이다.

현대는 가진 자가 성공한 자로 동일시되는 사회가 되면서 부를 축적한 사람들은  자신을 알리는 방법의 하나로 '보이지 않는 잉크'대신 '보이는 잉크' 전략을 쓰게 되는데 곧, 아무나 구매할 수 없는 값비싼 사치품 즉 소위 '명품'을 통해 자신을 과시하려는 것이다.

부자가 아닌데도 명품만 가졌다고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고, 부자가 비록 명품을 가졌다고 해도 그 사람이 명품이 되는 것이 아님은 만고의 진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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