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졸(守拙)의 반란
수졸(守拙)의 반란
  • 거제신문
  • 승인 2007.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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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일광 원고지로 보는 세상

가로 세로 19줄 381점의 바둑판 위에서 벌어지는 수는 오묘하기 그지없다.

돌을 놓는 방법에 따라 판세가 수없이 바뀌는 그 변화무쌍함 때문에 사람들은 매료한다. 더구나 바둑은 두는 즐거움이라기보다는 「이김의 철학」으로 어쩌다 이기는 요행이란 없고 철저한 계산과 치밀한 전략만 있을 뿐이다.

바둑의 기원은 중국 요와 순임금시대로 잡고 있으나 전설일 뿐이다. 우리나라 삼국사기 백제본기 개로왕조(蓋鹵王條)에 고구려 장수왕이 바둑을 잘 두는 승려 도림(道琳)을 백제에 보내어 백제왕과 바둑으로 친해지게 하여 국정을 파탄시키고 이를 기회로 공격하여 개로왕을 죽이고 한강유역을 차지하게 된다.

이로 인해 백제는 웅진으로 도읍을 옮겨야 하는 수모를 당한다. 고려시대 이규보(李奎報)의 시에 평양 기생 진주(眞珠)와 바둑을 두었다는 것으로 보아 여성들도 바둑을 즐긴 것으로 여겨지고, 조선시대에는 반가나 상인에까지 보편화된다. 현대바둑은 1945년 11월 조남철이 서울 남산동에 한국기원의 전신인 한성기원(漢城棋院) 설립을 효시로 잡고 있다.

바둑은 수준에 따라 급과 단이 있다. 대선주자의 한 분인 이명박후보가 여당의 후보 경선을 보고 「바둑 9급 셋이 모인다고 1급 되나」하고 비꼬기도 했다.

전문기사는 단(段)으로 말한다. 초단은 졸렬하고 지키기만 한다고 수졸(守拙), 2단은 아직 약간 어리석다고 약우(若愚), 3단은 힘만 믿고 까분다고 투력(鬪力), 4단은 약간 재주가 있다고 소교(小巧), 5단은 지략을 쓸 줄 안다고 용지(用智), 6단은 형태를 갖추었다고 구체(具體), 7단은 만물이 형통한다고 통유(通幽), 8단은 가만히 있어도 빛이 보인다고 좌조(坐照), 9단은 귀신의 경지라 입신(入神)이라 칭한다.

그런데 제12회 LG배 세계기왕전에서 수졸의 수준으로 입신의 경지에 오른 많은 기사들을 물리치고 결승에 오른 19세 한상훈 초단의 등장은 대이변으로 기록된다.

「뭐 저런 초단이 다 있냐」고 모두 혀를 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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