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남1녀 어부의 자식으로 태어나 많이 배우지는 못했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했기에 자신에게 돌아온 부(富)는 당연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어진 사회활동으로 이어지는 감투에 더 이상 부러울 것이 없었다. 외환위기가 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잘못 끊었던 어음에 부도가 나고, 당하기를 반복하며 서경수 거제시새우조망자율공동체 위원장(63)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약을 입에 털어 넣고 막걸리 두 대접을 마셨다. 그리고 바다로 뛰어들었다. 바다가 자신을 키웠듯 자신을 데리고 가라고. 그러나 모진 목숨은 끊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터덕거리며 돌아온 그는 깨져버린 삶에서 덩그러니 남겨진 아들을 봤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들을 위해서라도 살아야 했다. 그래서 어부가 됐다. 자신의 아버지처럼. 그렇게 그는 그물을 들고 바다로 나갔다.

밝은 전망을 기대하며 부푼 꿈을 새우에게 불어넣었다. 그리고 새우를 향해 바다에 어구를 던졌다. 13년 전, 이렇게 그의 새우잡이 어부의 삶이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어부생활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당시 수확량은 지금보다 40~50%가 많았고 새우의 품질도 뛰어났다. 그러나 개인이 찾아야 하는 판로의 한계는 중간상인의 배만 채울 뿐이었다. 그들만의 공동체가 필요했다.
서 위원장은 팔을 걷어 붙였다. 그리고 지난 2005년 22명의 회원으로 거제시새우조망자율공동체를 결성했다. 공동체를 만들고 제일 먼저 한 일이 단가 조율이었다. 단가조율에도 만족을 느끼지 못한 서 위원장은 직접 회원들의 새우를 가져다 삼천포·마산·부산 등지의 경매장을 찾아다니며 팔았다.
당시 1㎏당 2500원에 불과했던 수매가는 올해 최고가 3만원의 정점을 찍을 만큼 성장했고, 2015년부터는 우리앞마당 거제수협에서 경매를 볼 수 있게 됐다.
2번의 위원장 교체이후 4년 전부터 다시 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서 위원장은 "지금도 우리 어업인들의 형편이 좋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렇게 우리의 노력으로 우리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한다"면서도 "생산량이 많이 감소하고 남미 7개국과의 교역협상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현실에서 우리의 미래가 밝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거제시새우조망자율공동체 회원들은 어려운 사람의 형편이 눈에 보인다고 한다. 그러나 다들 불우이웃을 위해 돈을 척척 내놓을 만큼 형편이 좋지만은 않다. 그래서 회원들은 그들이 선택한 방법으로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

새우잡이를 하면서 바다에 버려진 폐어구와 폐어망, 폐통발을 걷어와 모은다. 그것들을 거제수협에 판매해 공동체의 살림살이를 꾸려나가고, 봉사활동도 이어가고 있다.
바닷속에 버려져 자원을 훼손시키고 있는 폐어구 등을 스스로의 노력으로 수거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의미가 크다. 여기에다 회원들은 수거된 폐어구 등을 판매한 금액으로 치어를 방류하고 있다. 지난해에만 500여만원으로 치어 1만3000미를 구입해 방류했다.
수산자원 회복에 돈이 아닌 노력으로 참여한다는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서 위원장은 "바다에 쓰레기를 버리게 되면 그만큼 나쁜 것을 우리가 먹게 된다"며 "바다를 내 집처럼 여겨야 한다"고 당부했다.
'우리바다는 우리가 지킨다'라는 구호 아래 이웃사랑과 봉사활동에 여념이 없는 거제시새우조망공동체는 자신들을 '거제의 일등 공동체'라고 자부한다.
서 위원장은 "어려운 시절이 다 지나간 것도 아니지만 회원 25명 전체가 묵묵히 노력하고 있어 너무 고맙다"면서 "우리의 활동이 지역을 떠나 전국에서 귀감이 될 수 있도록 먼저 솔선수범하는 자세로 더욱 열심히 해 나갈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그러면서 "어업인의 말에 귀 기울여 줄 수 있는 정부와 자치단체·수협이 옆에 있어준다면 어부는 그것을 방패삼아 더 열심히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바람을 전했다.